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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2

나무도 한 해는 쉬고 싶은 것이다

 

올라 갈 때가 있으면

 

내려 갈 때가 있고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은 것은 자연의 이치요 순리다

 

선지 빛 감잎이 장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영랑은 '어매, 단풍 들것 네.'하며 놀랐다. 감잎이 다 진 감나무는 가을의 또 다른 풍경이다. 가난하고 누추한 마을의 여기 저기 붉은 감을 단 감나무는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가을 서정이다. 우리 동네의 감은 거의가 다 먹감이다. 먹감은 자생적인 토종감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다른 감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내가 단감나무를 한 그루 집에다가 심었더니, 감이 안 열리고 몇 해만에 죽고 말았다. 접시 같이 납작한 접시감나무가 몇 그루가 앞산에 있기도 하고, 요즘 구례 하동에서 많이 나는 어른 주먹만 한 끝이 뾰쪽한, 우리들이 '장두 감' 이라고 부르는 감이 찬수네 앞산 감나무 밭에 한그루 있었고, 수수감이 정수네 집 샘 머리에 한그루 있을 뿐이었다. 정수네 집에 있는 수수감은 어찌나 달던지, 우리들이 늘 욕심을 내는 감이었다. 그 감은 달고, 물기가 많았다. 그 감으로 동네 아이들 설사를 멈추게 하기도 했는데, 그 감은 오래 간수 하거나 저장 할 수가 없는 게 흠이다.

 

마을 곳곳에 있는 먹감은 열리기도 많이도 열린다. 주로 곶감을 깎는다. 붉게 읽어 갈수록 감 한쪽이 먹빛이 들어가는데, 그래서 그 감을 먹감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감 중에는 똘 감이 있다. 똘 감은 곶감으로 깍지도 않는다. 떫기가 지독해서 잘 먹지도 않는다. 똘 감은 살보다 씨가 많다. 서리 맞은 똘 감은 지붕 위에 보관 해두었다가 추운 겨울날 내려다 먹었다.

 

감나무가 돈이 될 때에는 고욤나무에다 감나무를 접 붙였다. 고욤나무는 감나무 과다. 잘 자라고 강해서 사람들은 고욤나무를 가꾸어 적당하게 크면 고욤나무에다가 질이 좋은 감나무를 접붙여 가꾸었다. 고욤을 먹기도 하는데, 고욤을 따다가 작은 단지에 가득 넣어 두었다가 겨울에 수저로 퍼 먹기도 했다.

 

감을 딸 때는 감 망을 만들어 땄다. 감 망은 모자 같은 자루를 만들어 긴 장대 끝에 달아 높이 달린 감을 땄다. 감을 딸 때는 감나무 가지가 툭툭 잘 부러졌는데, 오히려 그것이 다음해에 감을 많이 열 개 하는 전지 구실을 했다. 감은 그 해에 새로 길어 난 새 가지에서 감이 열리는데, 감을 딸 때 감가지가 부러짐으로써 많은 가지가 새로 돋아난다. 감나무가 잘 부러진다고 해서 단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네에서 빨래방망이나 다듬이나 떡살도 감나무로 많이 만든다. 잘 부러지지만 의외로 단단하다. 감나무로 가구를 만들었는데, 여자 속살처럼 흰 바탕에 먹물 자국 같은 무늬가 그림 같아 감나무 장롱이나 가구는 비싼 값이 나갔다.

 

가을 일이 끝나 가면 감을 딴다. 하루 종일 딴 감을 방에다가 쏟아놓으면, 방안이 환했다. 감이 그렇게 방 가득 쌓이면 동네 어머니들은 품앗이로 감을 깎았다. 밤을 새워 감을 깎을 때 우리는 곶감을 깎을 수 없는 물렁물렁한 감을 가려 소쿠리에 담는 일을 했다. 물렁물렁한 감은 먹기도 하고, 썰어 강가 바위위에 말려 겨울에 먹었다. 그 것을 감 쪼가리라고 했다. 방 가득 쌓인 감을 밤새워 깎아 놓으면 아버지는 아침 소죽을 끓이며 그동안 다듬어 놓은 싸리나무 꼬챙이에 감을 꿰어 헛간이나 비가 잘 들이치지 않은 처마 끝에 매 달았다. 붉은 감이 굴비모양으로 엮어져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참으로 고즈넉한 농촌의 서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씩 감을 깎아 건조를 시키고 나면 감을 할머니 젖가슴처럼 쪼글쪼글 말라 갔다.

 

감은 자연으로 자라는 우리나라 많은 과일들이 그렇듯이 해 갈이를 정확하게 하는 편이다. 나무들도 해갈이로 잎을 피운다. 우리 동네 앞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는데 정자나무는 씨가 열리는 해는 잎이 그리 좋지 않다. 나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나무들을 보고 나무가 죽어 간다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나무도 한 해는 쉬고 싶은 것이다. 올라 갈 때가 있으면 내려 갈 때가 있고,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은 것은 자연의 이치요 순리다. 감이 많이 열린 해는 감이 작고, 감이 적게 열린 해는 감이 컸다. 그 또한 자연의 순리와 이치다.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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