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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선물하는 산타

▲ 김 선 희

 

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

오늘은 크리스마스, 일주일후면 새해 1월1일이다. 누구나 나이를 한 살 더 챙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난 1년을 곱씹어보는 시기이다. 문화계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천이면 천 가지 요구를 갖고 있는 관객과 접한다. 관객의 요구는 일정하지 않아서 시대와 환경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공중전화박스가 사라졌듯이 정신차리고 보면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아간다. 이 와중에도 변함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같이 어울리면서 이웃을 돕는 이들이 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선물하는 산타도 고맙지만 영혼을 위로해주는 예술을 선물하는 산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진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국내 주요 전시를 관람하는 미술기행을 진행해오고 있다. 매달 40명 내외의 미술애호가와 함께 블록버스터 전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의 기획전, 비엔날레 등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기행에는 전주지역 보육시설 청소년들이 함께한다. 우진문화재단이 참가비를 대고 전주지방법원 봉사모임인 '어울림회'가 아이들의 용돈과 인솔을 책임지고 있다. 11월 기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보육원에 일이 있어 선생님이 아이들 마중을 못 왔고 가는 방향이 같아 아이들을 태워다주게 되었다. 뒷좌석에 앉은 둘은 저희들끼리 대화를 시작했다. "너는 오늘 어떤 작품이 좋았냐?" "카푸어도 좋았지만 최보람 끝내주더라!" "그렇지? 야 어떻게 기계로 미술을 만드냐, 쇳덩어리가 숨을 쉬는데 정말 내 숨이 딱 막히데!!" "어머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했어? 실은 나도..."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인도출신의 영국작가 아니쉬 카푸어의 설치작품과 한국작가 최보람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보육원에 도착하였다.

 

보육원 아이들이 미술기행에 참여한 것도 5년이 다되어 간다. 전주지방법원 봉사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사무관(지금은 서기관이 되어있지만)의 제안으로 어울림회가 보육원 아이들을 미술기행에 보내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미술기행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드믄 일이다. 매달 40여명 중에 청소년은 서너명에 불과하다. 미술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누리는 혜택이다. 미술기행에 오는 보육원 아이들은 처음엔 서먹서먹해하고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색다른 소풍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미술기행은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이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미술작품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가까이서 뜯어보고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고. 지루한 그림도 있지만 아니쉬 카푸어와 최보람의 설치작품처럼 깜짝 놀랄만한 것들도 많다. 12월 기행에서는 고흐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문화계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예술이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오케스트라를 탄생시킨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 사례가 그걸 입증하였다. 국내에서도 엘시스테마를 벤치마킹한 수 많은 프로그램이 가동중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중년여성은 주말에 백화점 대신 전시장에 가고 명품백 대신 그림을 산다. 그림을 보는 청소년은 영화속에 등장하는 그림을 알아보고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한다. 새해는 예술을 권하고 선물하는 산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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