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홍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어머니는 나에게 어떠한 분이셨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릴 때 기억은 대부분 어머니와 관련돼 있다. 아버지는 옛날에는 으레그랬듯이 바깥 일에 바쁘셨고, 어머니가 집안 살림, 아이들 교육들을 전담하셨다. 잘못한 일에 매질을 하신 것도 어머니였다. 모든 것에 엄격했던 어머니는 그래서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대면한 첫 번째 극복대상였다. TV 보는 것, 친구와 놀다 늦게 들어오는 것 등 하고 싶은 모든 것은 어머니를 넘어서야 했다. 초등학교때 어머니와 기싸움을 하려고 밥을 안 먹고 며칠을 버틴 적도 있다. 내가 배고파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애달파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고 그 어릴때에 생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후에도 많은 일에서 사사건건 어머니와 충돌했다. 나와 다툰 뒤 어머니가 "너와 나와는 사주에 합이 안들었단다"고 혼자 하신던 말이 지금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 고속버스로 김치 등 각종 먹을거리를 가지고 서울에 오셨을 때 터미널에서 보자마자 짐이 많다고 투정했을 때 어머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어머니와 의견을 달리했던 모든 것이 이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결정이 올바른 길였고, 사랑과 배려의 결과였던 것이었다. 자식들은 키우면서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비록 필요한 것이어도 굳이 나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나를 볼 때 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우리 어머니의 사랑보다 저 멀리 낮은 곳이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본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의 사랑과 소중함을 조금씩 이해할 때가 되어서는 마음은 있어도 바쁜 서울생활 등을 핑계로 소홀해지고 말았다. 그러는 와중에 어머니는 기억이 점점 없어 지셨고, 4~5년의 기억 상실 기간을 거쳐 저 세상으로 떠나신 것이다. 어머니가 기억이 없던 기간에 가끔 전주에 내려와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여기저기 다녔던 시절이 너무도 그리워진다. 귀가 따갑도록 듣고 들었던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자식이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고자하나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교훈을 실천하지 못한 불효자가 되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문학소녀였다. 고등학교 때에는 연극반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셨다. 그리고 우리 4남매를 키우신 후 50대 후반부터 글을 쓰셨다. 수필을 쓰셨는데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어머니'였다. 외할머니는 40이 넘는 늦은 나이에 어머니를 보셨는데 끔찍이도 사랑하신 것 같다. 10년 전 출간된 어머니의 수필집 이름이 〈그리운 어머니〉이듯이 주요 내용이 어릴 때 추억, 외할머니의 어머니 사랑 등이다. 이번에 어머니의 수필집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외할머니의 어머니 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향기'라는 수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의 뿌리가 어머니의 사랑인 것처럼 나의 자식들도 사랑이라는 내 기운을 얻어 늘 곱게 피어날 것을 믿어봅니다.…나 또한 바람이 있다면 어머니처럼 자식들 가슴에 오래오래 좋은 어머니로 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면면히 곱게 흘러내리는 어머니의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체취를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 크셨기에 우리 4남매가 나름대로 건실하게 자랐고, 이제 마음 한 가운데에 항상 어머니를 간직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본받아 더 좋은 어머니, 아버지가 되리라고 믿는다. 어머니께서 평소 도리와 정직을 강조했듯이 자식된 도리, 또 부모로서 도리를 정직하게 해 나가야겠다. 어머니에게 소중했던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다. 어머니께서 항상 저에게 하신말 "너는 간이 약하니 술을 먹지 말아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다가오는 새해에 바로 술을 끊지는 못해도 어머니 말씀대로 술을 줄여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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