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흥재)의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에 가면 지난 13년 간 그림이 가장 많이 팔렸던 피카소의 100호 짜리 유화'누드와 앉아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오랜 시간 '최고가'라는 타이틀 덕분에 어딜가나 사람들을 몰고 다녔던 천하의 피카소도 작품 판매량에선 지난해 중국의 장다첸과 치바이스에 밀렸다. 계속되는 세계 미술시장 침체에도 소위 '우량주'에 해당되는 작품은 이렇듯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컬렉터' 시대가 '묻지 마 컬렉터' 시대로 가는 이유일 것이다. '문화, 경제로 읽다'에서는 알쏭달쏭한 미술품 가격 책정을 짚어봤다. 지난해 한기가 돌았던 국내 미술시장은 물론 아직도 거래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지역 미술시장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작품 가격 책정 어떻게 이뤄지나=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을 이야기할 때 기준이 되는 게 '호당 가격'이다. '호(號)'는 서양화 캔버스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가로폭 비율에 따라 인물화, 풍경화, 바다 풍경화로 나뉜다. 대개 1호는 엽서 두 배 정도(22.7×15.8㎝) 크기.
'중진 작가 A씨는 호당 50만원을 넘는다더라', '신인 작가 B씨는 호당 20만원은 된다더라' 등의 설왕설래를 종합하면 '호당 가격'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며, 작가의 예술적 수준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지곤 한다. 아무리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부심이 뛰어나고, 평론가로부터 찬사를 받아도 호당 가격에서 밀리면 별 볼일 없는 작가로 간주되기 쉽다. 물론 작품의 가치를 가격으로만 평가하는 게 과연 예술이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미술시장에선 블루칩 작가들을 제외하곤 시장가가 형성되지 않는 작가가 더 많다는 데 있다. 지난해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미술품의 객관적인 가격 산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미술품 가격지수'(KAPAA 인덱스·Korea Art Price Appraise Association index)를 내놓기도 했으나, 이것은 일부 작가만 표준가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매회사나 갤러리에선 이를 기준 삼아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 호당 가격 변수는? 나이·이력·희소성 등= 미술품 가격 정보지나 옥션 등을 통해 특정 작가의 작품 가격을 알아보는 것은 투자의 ABC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존 작가의 작품 가격이 형성 돼 있는 경우도 적거니와 공산품 가격처럼 이 작가의 작품은 얼마라고 제시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국내 미술 경매 시장의 우위를 차지하는 서울옥션의 이승환 기획팀장은 "경매회사의 경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최저가와 최고가 가격을 대략 예측한 뒤 합의점을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당 가격'은 작가의 나이와 경력, 희소성, 인지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가격 책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전에 팔린 비슷한 작품의 가격이 얼마인지, 작가의 전성기 시절 작품인지, 어떤 전시장에서 전시됐는지, 그동안 소장자는 누구였는지, 어떤 도록에 실렸는지, 그림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사항을 세밀하게 검토해 전체 회의를 거쳐 그림값을 매긴다.
하지만 경매 시작가가 어느 정도에서 시작한다는 공식은 없다. 다만, 시작가가 낮을수록 가격의 상승폭이 크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생긴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참가자들이 많을 경우 현장 분위기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매회사 수수료는 대개 10% (부가 세 별도)정도 받는다.
△ 같은 작가도 그림 가격 제각각= 같은 작가라 하더라도 작품 가격의 편차가 큰 경우가 꽤 있다. 왜 일까. 일단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다. 경매회사를 통해 형성되는 시장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충실하게 지켜진다. 화랑이나 아트페어 등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직거래를 통해 유통 비용을 절감시키면 상대적으로 싸게 거래될 수도 있다. 물론 소비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경험이 영향을 미친다. 최윤석 서울옥션 경매팀 부장은 "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높을 때나 작품 수가 몇 점 되지 않는 시점에 놓였을 때 혹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일 경우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을 순 있으나 어두운 그림 보다는 밝고 화려한 그림이 잘 팔린다든가 한국화 보다는 서양화가 선호된다는 등의 일각의 등식은 통용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전북 출신 생존 작가 중 몸값 최고가는 김병종 서울대 교수. 서울옥션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지난해 작품 '생명의 노래 - 숲에서'(55.1 ×67.0㎝)는 1000~1500만원으로 나온다.
하지만 국내·외 아트페어를 통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팔리는 등 선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미술 시장은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미술품 가격을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보이는 전북도립미술관만 해도 "열악한 미술관의 현실을 감안해 당초 금액보다 낮은 액수로 작품을 들여오고 있다"면서 "작품 가격을 공개하긴 애매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 갤러리와 경매회사의 '이중 가격' 논란= 더욱이 경매회사는 갤러리와 미묘한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지역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서울옥션과 같은 메이저 경매회사와는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지역 갤러리의 자성론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갤러리들은 경매회사가 작품 가격을 최저가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갤러리가 작가들과 제시하는 '호당 가격'이 더 비싸다는 불만을 산다며 하소연했다. 블루칩 작가에 해당되는 몇몇 인기 작가를 제외하곤 해외 미술품 거래가 더 많은 국내 경매회사에선 작품 수요가 적은 국내 작가들이 원하는 호당 가격 보다 낮게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게다가 갤러리들도 작가와 계약을 맺고 지원하는 대신 그 갤러리를 통해서만 작품 거래가 이뤄지는 '전속 작가제'를 지키지 않아 갤러리마다 작품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림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일각의 속설은 작품 가격이 다를 수밖에 시장 여건을 반영한 이야기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