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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기대한다

▲ 박 학 래

 

군산대 철학과 교수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박제화된 유품이나 기억의 편린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지역의 문화를 특징짓고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며, 지역민의 동질적 유대감을 일깨우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남학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남의 문화적 기반을 체계화하고 현재화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길 소망해 왔고, 지난 10여 년의 망설임과 시행착오를 넘어 올해 들어 '(가칭)한국학호남진흥원'의 설립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자칫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호남의 전근대와 근·현대 기록문화유산 등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수집·정리·보관·연구하고, 이를 재문화하는 동력을 생산하고자 하는 학술문화기관이다. 수도권에는 오래 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설립되어 한국학 연구와 문화 생산을 주도하고 있으며, 영남지역의 경우에는 지난 1990년대 중반 영남문화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고 대중화하는 중추로서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유독 호남 지역만 이러한 기관이 설립되지 못한 채, 고립 분산적으로 호남 문화의 집산과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보니 타지역에 비해 문화 연구의 활성화, 특히 전통 문화의 현재화와 재문화화에 한계점을 노출해왔다.

 

지방 분권이라는 현실적 조건, 확대되어 가는 지방 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중앙 중심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다양성과 일상성을 탐색하는 한국학 연구 경향이 맞물리면서 지역학 내지 지역 문화는 이제 역사와 문화 연구의 중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은 그 내용을 충분히 담아야 할 미완의 그릇이고, 향후 역동성을 갖춰 미래의 삶에 투영되고 재문화화해야 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미래로서의 전통 문화유산, 특히 호남 문화 유산은 소실 및 유출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고문헌(古文獻)의 경우, 호남 인물들의 문집 3천여 종, 지방지(地方誌) 2천여 종 등 모두 20여만 권 이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10만~15만 점에 이르는 고문서(古文書), 수십만 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고서화(古書畵), 2만 여 장 정도로 추정되는 고목판(古木板) 등이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지역의 기초학문과 문화의 재생산 기반이 더욱 약화되어 새로운 지역 문화의 기초마저 흔들리는 현실을 감안할 때, 호남지역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위한 호남지역 연구자협의회'를 최근 결성하고, 각계에 건의문과 호소문을 전달한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호남지역에 이 진흥원이 건립되면 그 역할과 기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10여 년간 30여만 점에 달하는 기록문화 유산을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록을 목표로 목판 수집운동을 벌이고 있는 점에 비추어 우리 지역에 동 진흥원이 설립되면 호남을 배경으로 하는 보다 진전된 문화유산의 집적과 활용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하여 전통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한 차원 높은 현대의 지방 문화 창출이 기대된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설립을 위해서는 앞으로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지역민이 문화유산이 사라지면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함을 인식하고, 진흥원 설립을 위해 뜻을 모은다면 반드시 이룩될 수 있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위한 지역민의 관심을 기대하며, 특히 곧 출범할 새 정부가 지역 발전을 위한 토대로서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길 촉구한다.

 

△ 박 교수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蘆沙 奇正鎭의 哲學思想 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군사관학교 전임강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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