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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뱅과 전주 한옥마을

박제된 아름다움 아닌 사람냄새나는 삶 터가 관광객에게 감동 준다

▲ 이 승 재

 

서울지방우정청장

예전 미국 유학시절 태평양 연안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솔뱅(Solvang)이라는 작은 마을을 들른 적이 있었다. 솔뱅은 1900년대 초부터 덴마크 출신 이주민들이 모여 살면서 덴마크 풍으로 가꾸어 '미국 속의 덴마크'라 불린다. 꽃 농사가 주업이던 이 한적한 시골마을은 인구 약 5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들을 비롯해 매년 40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덴마크 말로 '햇빛이 내리는 정원'을 뜻하는 솔뱅은 안데르센의 고향인 오덴세(Odense)를 연상시키듯 색종이 같은 색감으로 풍차, 우체국, 서점, 레스토랑 등 모든 건물과 도로를 조화롭게 구성해 관광객들로 하여금 마치 동화 속으로 빨려들어 온 듯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근 전주 한옥마을이 연간 관광객 500만 명 시대를 열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그 진가가 국내는 물론 외국 관광객들에게까지 알려져 주말에는 엄청난 인파로 북적인다고 한다. 내게 전주는 언제나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곳이다. 콩나물국밥에 모주 한 잔 곁들이고 뜨끈한 한옥 아랫목에 몸을 누이면 객지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풀어진다. 작년에는 서울지역 우체국 직원들과 전주 한옥마을을 두 차례 방문했는데, 참가자들 모두가 한옥에서의 하룻밤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입을 모았다. 그동안 우체국 직원들은 제주도나 강원도 등 알려진 관광지를 선호했으나 이제 전주 한옥마을도 매력 있는 관광코스로써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고향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주 한옥마을이 여러 민속촌의 한옥들과 다른 점은 아름다운 조형미 외에도 사람들과 함께 숨 쉬는 체험공간이라는 점이다. 솔뱅과 전주 한옥마을의 공통점은 바로 '박제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삶의 현장'이라는 점이 아닌가 한다.

 

요즘처럼 한옥이 인기가 있기 전인 2000년대 초, 서울에서 와인사업을 하던 친구가 서울시 사적(史蹟)으로 지정된 한옥을 개조해 와인 레스토랑을 운영하겠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는 유럽의 와인 문화와 한국의 전통 문화를 접목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서울 인사동 민가다헌(閔家茶軒)이다. 한옥에서 와인과 퓨전 한식요리를 즐길 수 있는 민가다헌은 오늘날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통한옥의 문화관광적 가치를 인식해 숙박, 음식점, 박물관, 화랑, 문화 체험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제는 한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이해도 높아졌다. 콘크리트 건물에 찌든 현대인들이 고향처럼 편안함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서울 혜화동사무소는 최초의 한옥 공공청사로 이름을 올렸고, 갑신정변의 현장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 우정(郵政)업무가 시작된 우정총국도 작년부터 새롭게 우체국으로 탄생한 한옥 건물이다. 전주 한옥마을처럼 한옥을 사람 사는 곳으로 되살리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 편에서는 관광지로서의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하는 우려의 목소리와 주거용 한옥이 줄고 판매시설이 급증하는 등 전통모습의 변형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한옥의 모양이나 구조를 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주 한옥마을의 미래가치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서 관광객들이 그 곳에서만 얻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솔뱅과 같이 전주 한옥마을이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다시 찾고 싶은 대표 관광지로서 지역발전을 이끄는 마중물이 되기를 고대해 본다.

 

△이 청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미국 오레곤대학 경제학 석사, 동국대 무역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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