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쯤 나도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 그때 내 삶은 1년 중 3개월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7~8개월은 모은 돈으로 버티며 감옥에 갇히듯 책만 읽었다. 내가 읽은 책은 대충 1년에 300권쯤이었다. 그 많은 책, 그 많은 문장 중에 유독 나는 이 구절을 기억한다.
당연하다. 사람이 사랑 말고 더 무엇으로 절망하고 더 무엇으로 행복해 진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선행과 악행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그것이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생기는 사건 사고일 것이다. 나도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의 화자인 한나가 말하는 사랑은 뭔가 이상하다. 설렘도 없고 흥분도 없다. 약간 허무하고, 서늘하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버티는 오기를 닮았다. 무엇보다 문체가 서정적이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그러니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한나는 히스테리가 심하고 우울증이 있어 옆에 있는 사람, 특히 남편 미카엘을 못살게 군다. 그런데 미카엘은 바보처럼 한나의 짜증을 모두 받아준다. 한나는 더 짜증이 난다. 남편이 잘해줄 수록 절망감에 몸부림친다. 제발 미카엘이 화를 내주기 바랄 정도다.
"이 남자는 언제 자제력을 잃을 것인가? 아, 한번이라도 저 사람이 겁에 질린 것을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기쁨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미친 듯이 달리고."
한마디로 이 둘의 관계는 틀어져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한나는 언제나 똑같은 일상에 결핍을 느끼고, 가끔은 환상 속으로 도망쳐 그 결핍을 채우려고 하지만, 환상은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결핍을 더 들어내는 장치로 변할 뿐이다.
남편 미카엘은 작은 행복을 원하고, 끝없이 인내하고 참아내고, 헌신적이고, 절제하고, 논리적이고, 현명하고,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
하지만 그 상태는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위태로운 삶을 진행시킨다. 미카엘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박사학위를 받는 것! 이 얼마나 지루한 삶인가! 한나는 미카엘과 미카엘을 닮은 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조용하고 현명해지다니, 얼마나 지루한가."
작가 아모스 오즈는 말한다.
"나의 문학세계는 일상이며 주인공들은 평범하다. 그들은 일상의 현실과 꿈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별을 보다 실족하는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꿈으로 인해 가정이든, 자기 내부든, 국가든, 자신이 처한 공간의 파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주인공 한나는 그렇게 시들어간다.
이 소설을 소개하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현실에 치여 무감각하게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사랑하는 힘이 차고 넘치는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이 경계가 아슬아슬하다. 가 닿을 수 없는 맹목적 꿈에 의해 절망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 꽂힌 심장 없는 허수아비가 될 것인가!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싶다. 허상이 아닌 삶에 대한 진지한 사랑을. 우리는 여전히 늦지 않았다.
※소설가 강성훈씨(35)는 단편 소설'못'으로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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