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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국악원장 임화영 명창 - 늦게 꽃 핀 소리인생, 지역 국악 등불로

우리고장 명인명물 - 20대후반부터 각종 소리 섭렵…수많은 제자 길러내…2007 춘향국악대전 대통령상 받으며 명창 반열에

▲ 익산국악원장 임화영 명창의 판소리 공연.

"훌륭한 제자들이 익산을 넘어 전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며 국악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꺼져가는 국악의 등불을 환히 밝혀가고 있는 '작은 체구의 국악 거인' 익산국악원장 임화영 명창(52).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뒤 힘겹던 생활고를 무릅쓰고 시작한 그의 국악인생이 지금의 익산지역 국악의 등불을 밝혀가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길러낸 제자들이 수백 명. 국립국악원이나 도립국악원, 시립국악원 등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제자들도 상당수 된다.

 

SBS스타킹에 나와 구성진 판소리를 선보였던 박성렬 군(15)도 임 명창이 지도하고 있다.

 

사실 임 명창은 20대 후반 뒤늦게 국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너무 어렵게 살던 생활고로 한 달 1만5000원하던 수강료가 부담되어서 그만두기도 했다. 이후 건강이 악화됐고, 국악과 떨어지지 못했던 계기가 됐다.

 

이처럼 국악을 너무나 사랑해 지금도 열정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그의 국악인생 30년을 뒤돌아보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집념 하나로 전북도지방무형문화재 최란수 선생과 오정숙 명창, 남해성 선생 등으로부터 각종 소리를 사사하고 모든 소리를 두루 섭렵하면서 지난 2007년 소리꾼들의 꿈인 춘향국악대전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쥐며 명창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작은 키에 몸집도 작아 소리가 어디에서 나올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소리 하나는 타고 났다는 스승님들의 평가 속에 그의 열정이 보태졌다.

 

임 명창은 "정말 수없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부족하지만 명창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받은 만큼은 안 되겠지만 가진 모든 것을 후배들을 위해 쏟아내려는 생각이다"며, 4번의 전북교육감상과 전북도지사 상 등 9번의 지도자상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후진 양성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임 명창은 전국의 판소리경연대회에서 빼놓지 않고 섭외하는 1순위 심사위원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입김에도 흔들리지 않고, 명확한 심사를 하기 때문에 임 명창이 심사한 대회는 이견을 보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누구보다 힘든 가난을 겪어봤기에 보이지 않게 주변을 돕는 따뜻함을 갖춘 지도자이기도 하다.

 

'늦게 시작한 만큼 아직 힘이 충만하다'는 그는 "정정렬 국창이 살아계셨던 익산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며 "국악이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은 제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임 명창은 "머리를 뽑아 신을 삼아드려도 다 못 갚을 은혜를 스승님들께 입었다"면서 "스승님들께 받은 은혜를 후진 양성에 쏟아낼 계획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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