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상징하는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첫번째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고, 땅속에서 잠자던 벌레들이 깨어난다. 이어 우수(雨水)에 눈이 녹고 비가 오면 초목에서 싹이 튼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초입인 셈이다.
예전에는 이때부터 농사준비에 바빴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했다. 소를 보살피고, 재거름을 재워두고, 뽕나무 밭에 오줌을 주고, 겨울동안 묵었던 뒷간을 퍼서 두엄을 만들었다. 하지만 때 맞춰 '입춘 추위에 김칫독 깨진다'고 봄을 시샘하는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기도 한다.
입춘과 관련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풍습이 입춘축(祝) 또는 입춘방(榜)이다. 대문이나 집안 기둥에 한 해의 무사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글을 써서 붙이는 것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등이 그것이다. 또는 한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이나 '호(虎)'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조상들은 오신반(五辛盤)이라 해서 눈 밑에서 갓 돋아난 햇나물을 먹으며 봄을 맞이했다. 겨울동안 섭취하기 어려운 비타민 등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오신반은 움파(겨울에 움속에서 자란 빛이 누런 파), 멧갓(말린 갓), 무초, 승검초(당귀 싹), 달래, 평지(유채), 부추, 마늘 중에서 5가지로 매캐하고 쓴 맛이 강한 나물을 무쳐 먹는 것을 말한다. 또 이날은 보리뿌리점(麥根占)을 치기도 하고, 흙이나 나무로 토우(土牛) 또는 목우(木牛)를 만들어 풍년을 기원했다.
벌써 남도땅 지리산이나 백운산에는 고로쇠 물 채취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제천의 시 '입춘부(立春賦)'는 이를 잘 표현했다. "고로쇠나무에 등을 기댔더니, 어느 순간 서늘한 손길/ 아, 요녀석이 내게 지금 기(氣)를 보내오는 구나/(중략)/ 머잖아 내 눈, 내 입, 내 귀에서도/ 푸른 눈이 트고, 고로쇠나무의 어린 잎이 하나 둘 돋아나겠구나/ 이 봄엔 아예 나도 고로쇠나무가 되어/ 뿌리 아래 갇혀 있던 봄 기운을/ 물관이 터질 듯 타고 오르는, 이 솟구치는 노래를/ 전해주어야겠다/ 그리운 이가 등을 기대면,"
입춘은 "나는 살았다고, 너도 살아있냐?"고 묻는 절기인 듯하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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