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리 지역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우리 지역을 근거로 활동한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사람이 바로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다. '실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는 그는 격변과 혼란으로 점철된 당시의 시대적 상황 하에서 자기 자신을 우리 지역인 부안(扶安)으로 유폐시키고, 당대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모색을 시도했던 사상가이다. 그는 현실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도피나 은둔이 아니라 궁벽한 농촌에서 백성들과 삶을 같이하면서 얻은 경험, 수많은 서적을 섭렵하고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지식, 그리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얻은 실제적 경험과 생생한 자료를 어울러 국가체제 전반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고자 '개혁 지향적 은둔'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짧지 않은 그의 노정은 '반계수록(磻溪隧錄)'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반계수록'은 17세기 이후 정파를 초월하여 모든 유학적 지식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영조의 명에 의해 간행되기도 하였다. 박지원(朴趾源)은 '허생전'을 통해 유형원을 군량을 조달할만한 재능 있는 인물로 묘사하였고, 매번 "유형원의 평생 경륜은 큰 유학자라 할만하다"하다고 극찬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유형원은 실학 연구의 중심에 서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의 한국학 연구를 주도한제임스 팔레(James Palais)의 연구 중심 주제도 유형원일 정도로 그의 학술사상이 가지는 의미는 담대하다.
근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그의 개혁안에서 지금도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는 지역적 편중 해소를 위한 개혁안이다. 물론 그의 시대에도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간의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이 큰 현안이었겠지만, 21세기에 진입한 현재에도 '지역 간 균형 발전'이라는 것이 국가 운영의 중요한 화두로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혜안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지역에서 유형원에 대한 관심은 소홀하였다.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몇 해 전 학생들과 함께 부안 보안면에 소재한 그의 생거지(生居地)를 찾았을 때 도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황폐하게 방치되었던 모습은 학생들을 인솔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정도였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부안군을 중심으로 선양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올해 5월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비롯하여 문화자원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동안 유형원에 대한 연구가 학계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집적된 만큼 다시 그의 사상을 재론(再論)하기보다는 보다 대중적이고 진일보한 학술대회가 진행되길 기대하며, 이를 통해 단순한 선양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재문화화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희망한다. 아울러 지역민들의 우리 지역 문화자산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관심과 접목되어 전북의 정신문화자산이 성숙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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