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장작가마로 고려청자·이조자기 재현 많은 시행착오 겪은 뒤 자타공인 최고 경지에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 자락에서 '선운자기'란 이름으로 묵묵히 고창자기의 맥을 잇고 있는 도공, 청사 김종한씨(56·한국미술협회 고창지부장).
그는 1973년 청자의 대가인 동곡 류하상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예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 고려청자의 상감류, 분청사기의 이조자기를 재현하며 41년째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도공들이 힘든 전통방식의 장작가마를 포기한지 오랩니다. 장작가마는 이젠 전시용으로 전락해 버렸고 손쉬운 전기나 가스가마가 그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렸습니다."
도예계에선 김종한씨의 작품이 전통도자기의 세계를 섭렵하며 이미 경지에 달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선운자기 가마터 옆으로 마련된 김종한 대표의 작품 전시실에는 물레질하는 도공의 숨결과 밤세워 가마불을 응시하며 흘린 도공의 땀방울, 사위어 가는 불길에 도공의 가슴뛰는 설렘이 스민 소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 대표의 작품 가운데 '청자 2중 투각 목당초문항아리'는 작품이 2중으로 되어 있고 표면을 당초문항으로 투각하였으며, 선대부터 자연유약을 고집한 작품으로 난이도가 높은 수작이다. 두개의 항아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하나의 짝으로 완성되므로 아주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전통자기의 색깔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불과 흙과 유약이라고 한다. 김대표는 "그중에서도 '불'은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비법으로, 불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지며, 불길을 조절하는 능력은 기나긴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힘든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대개 백자와 청자의 경우, 가마 안에서 밖으로 불길이 나올 정도의 '환한 불'을 유지해야 하는 반면, 분청사기는 가마안에 불이 꽉 차지 않는 '산화 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말로는 쉽지만 장작가마가 사라지면서 불 조절법을 아는 도공이 이제는 거의 없다."고 씁쓰레 했다.
선인들의 애환과 인내를 배우기 위해 전통가마를 고집하는 김 대표는 1990년 선운사 근동에 선운자기를 설립하고,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굽기위해 경사진 언덕에 여러개의 조그만 산봉우리 모양의 '봉우리 가마'를 만들어 지금까지 불을 지피고 있다. 봉우리 가마는 조선시대 백자를 굽는 가마로 개발됐다.
많은 시행착오와 각고의 노력으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최고가 되었다. 그의 선운자기는 설립된지 8년만에 전라북도 최고 명품업체로 지정되었으며, 그의 작품들을 통해 신미술대전 특선, 신미술대전 추천·초대작가, 전통공예 전국 공모전 심사위원, 전북도 전통공예인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고창지부장(현) 등의 결실을 거두었다.
김 대표는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장작대신 편리한 가스가마를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우리 도자기의 깊이를 재현할 수 없기에 굳이 어렵고 실패 확률이 높은 전통가마를 고집한다"고 말한다.
전통자기는 우선 배우기도 쉽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생활을 보장해 주지 못해 힘들다. 그러다 보니 뒤를 이으려는 사람도 없다.
김 대표는 또 "지금까지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통자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아들한테 이 일을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이라며 "아들한테 곤궁한 도예의 길을 강요할 순 없잖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김종환씨는 호구지책으로 고창군으로부터 선운산 집단시설지구 상가를 임대하여 특산물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자기 옆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김종환씨가 한눈팔지 않고 고창자기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평생을 바쳐 온 도공의 길을 마음놓고 걸을 수 있도록 그의 여건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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