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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정신을 되새기며

그냥 하루 쉬는 날 아닌 민족 자존 위해 희생한 애국 선열에게 감사를

▲ 김 명 한

 

전주보훈지청장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 어느덧 봄날의 따스함이 느껴지고 있다. 올 겨울 매섭던 한파도 주춤해지면서 새봄을 맞는 기쁨과 함께 3·1만세운동의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이 가슴에 뭉클 와 닿는다.

 

2010년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가 전국의 초중고생 약 4000여명을 대상으로 3·1절 관련 학생인식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무려 40%가 3·1절의 의미를 모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그날이 점점 우리 삶 속에서 잊혀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3·1독립만세운동은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최초의 민족운동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속에 억압받던 우리 민족이 분연히 일어나 세계만방에 민족자존과 숭고한 독립정신을 크게 떨친 역사적인 사건이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장례 기간인 3월 1일 정오에 민족대표 33인이 선포한 독립선언서 '오등은 자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노라'라는 문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0년 동안 참고 참아왔던 민족의 함성이자 간절한 염원이었다.

 

3·1운동을 주도했던 손병희·한용운 선생 등은 독립선언서가 선포된 뒤 일경에 피체되었으며, 파고다 공원에 모여 있던 수천 명의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전국에서 상경한 시민과 민중들이 가담하였고 지방에 내려가 전국적으로 3·1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그 후 3월 10일 이후에는 전국 각 지역은 물론 만주, 미국, 중국, 일본으로 만세 운동이 퍼져 나갔다. 3·1운동 이후 3개월간 전국 독립만세운동 횟수는 1542회, 참여한 인원만 200만명이 넘는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이 전국을 뒤흔든 3·1독립만세운동의 결과로 대내적으로는 주권회복을 위한 민족의 대동단결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중국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리고, 국외 독립운동이 활성화되어 조국 광복을 위한 노력들이 가시화 되었다.

 

특히 우리의 3·1만세운동이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무저항 배영(排英)운동인 제1차 사타그라하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중동지역의 민족운동을 촉진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물질적 풍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것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신명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애국정신 위에 이루어졌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제94주년 3·1절을 맞아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3·1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한 3·1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우리지역 각지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3월 1일 남원 덕과와 정읍 태인을 시작으로 3월 9일에는 전주와 임실 오수에서 3월 19일에는 김제 등지에서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펼쳐진다. 선열들의 애국의 숨결을 느끼고 나라의 소중한 마음을 갖도록 3·1만세운동 재현행사에 함께 참여해 그 날의 함성을 다시 한 번 함께 외쳐 보고 들었으면 한다.

 

또한 3·1절을 단순히 쉬는 공휴일로 생각할게 아니라 이날 하루만이라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피땀 흘리신 애국선열들에게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가정마다 태극기를 게양하여 3·1절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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