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운영팀장
불만제조기인 정여사 딸이 소주를 바꾸러 갔다. 소주가 써도 너무 쓰다는 이유로 이미 반절이나 마신 소주를 천연덕스럽게 바꿔~줘 라고 했고 매장 직원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떼쟁이 정여사가 나타나 억지를 써서 결국은 원하는 보상을 얻어내 진상의 여왕임을 과시했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팥쥐 엄마가 있고 수많은 정여사가 있다. 그녀들은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 것일까? 트라우마는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으로 외상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되어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팥쥐 엄마는 그 사회에서의 아웃사이더였을 것이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콩쥐가 가질 모든 것을 자신의 딸 팥쥐가 갖도록 노력했다. 정여사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그런 성격을 표출하는 블랙컨슈머이다. 발이 큰 팥쥐에게 맞지도 않은 꽃신을 억지로 신기는 행동이나, 말도 못하는 브라우니에게 공격을 명령하는 애교스러운 억지를 쓰는 우리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두 엄마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악의가 있는 것도 사실 아니다. 그보다 정도가 훨씬 심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으며, 현대사회가 갖는 불합리와 모순은 이미 우리들 모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어 우리를 매일 우울하게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팥쥐 엄마나 정여사의 개그를 보면서 미워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것일까? 정당한 행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며 약간 바보스럽기까지 한 그녀들의 '진상짓'이 작게나마 모두 우리 안에 존재해서일까? 아니면 더 큰 불합리함이 존재하기에 사소한 그녀들의 억지는 그냥 넘기게 된 것일까? 트라우마가 너무도 다양하고 많은 정여사나, 재혼이 주는 사회적 중압감에서 오는 팥쥐 엄마의 트라우마를 인정해서일까?
내가 있는 공간도 다양한 행동양식으로 표현하는 정여사들이 있다. 바꿔줘 라고 단순하게 우기는 고객부터,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주장을 펼치는 고객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리정연하고 냉철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 원하는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개그에서 나오는 정여사는 여기에 비하면 정말로 애교가 많은 블랙컨슈머일 뿐이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가끔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만난 여러 가지 타입의 정여사들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타 공간에 가서 자신이 그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정여사가 될 수 있는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고도 말한다. 거기에도 역시 자신들 같은 아르바이트가가 있을 것이고 자신들이 겪은 수모나 힘듦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나보다 한참 어린, 이제 사회를 막 배워 나가는 친구들에게서 역지사지를 배운다.
현대사회의 트라우마는 분명 치료되어야 할 병이다. 악의가 없는 내안의 정여사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치유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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