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흑백 TV, 풍금, 타자기, 유성기에서 두레박, 달구지, 요강 등 언제부터인가 곁에서 사라져 간 물건들.
색 바랜 흑백사진 속 촬영 날짜와 촬영 동기 등을 기록한 어색한 글씨체와 1950~60년대 행사 팜플릿, 그리고 빛바랜 초등학교 졸업앨범 등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상에 나와 제 할 일을 다 하며 사람들의 손때를 타던 물건들이 단지 빠르고 편리함만 좇는 세파에 밀려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람과 물건 모두가 서로 존중할 줄 아는 세상이 조화로운 세상이다"며 한때 유용하게 사용되다 사라져 간 물건들이 안타까워 수집하기 시작한 이황세 군산향토민속박물관장(65).
지난 2010년 군산 동초등학교 평교사로 퇴직한 이 씨는 지난 30여년간 군산지역에서 낡고 버려지는 물건들을 수집해 왔다.
수집된 각종 물건이 차고 넘치면서 2002년 군산 개정면 운회리 정수마을 2145㎡의 부지를 구입해 사설 박물관 '군산향토민속박물관'을 개설해 박물관장 겸 향토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스토리텔러가 됐다.
이 관장은 '거체전진(擧體全眞)' 즉, 모든 존재는 그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존재한다는 화엄경의 경전 구절을 바탕으로 물건들도 사람들을 위해 진실을 다해 존재했다는 마음으로 대하다 보니 어느새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가 돼 수만점은 족히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1980년대는 군산에서 아파트 건축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아파트가 하나 둘 들어서면서 기존 단독주택 형식의 주거형태와 생활 습관이 급격히 바뀌면서 살림살이들도 아파트에 맞는 물건들에 밀려 버려지기 시작했다.
이 관장은 "80년대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골목마다 버리고 가는 세간살이들이 가득했다"며 "멀쩡한 물건들이 단지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돈을 들여 구입하지 않고 오직 발품을 팔며 모은 것들이지만, 이곳에 소장 중인 물건들은 모두 군산에서 사용됐던 물건과 자료들로써 귀중한 향토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관장의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 수집 열기는 대단하다. 한번은 모두 떠난 빈집에 들어가 혹시 버려진 물건이 있나 살피러 다락방에 올라갔다 떨어져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보름 이상 병원신세를 졌다.
또 1996년 산림관리 도로를 개설하던 대야면 산월리 현장 절단부에서 옹관의 작은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예사롭지 않아 군산대학교 박물관에 알리면서 이곳이 '산월리 고분지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현재 군산향토민속박물관은 시가 운영하는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기획전시 의사를 타진해 올 정도의 규모를 소장하고 있다.
이 관장은 당초 박물관 조성을 2012년까지 마칠 계획이었지만, 최근 차질이 생겼다. 소장품들을 제대로 전시하려면 전시공간 등 규모가 최소 6600㎡는 돼야 하지만 초등학생 견학의 경우, 최대수용인원이 60명에 그치는 등 협소하기 때문이다.
이 관장은 "이곳의 소장품들과 유사한 물건들로 꾸며 놓은 제주도의 사설 박물관은 관광명소가 됐다"며 "소장물품이나 종류 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음에도 장소가 협소해 제대로 전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새만금이나 금강 하굿둑 인근에 더 넒은 부지가 마련된다면 노천박물관이나 다름없는 군산의 역사를 제대로 전시할 계획이다"며 "개인이 하는 문화사업에 대해 지역에서 제대로 평가하고 힘을 북돋워 준다면 결국 모두의 자산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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