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무대미술을 내세워 느린 몸짓과 조명을 강조하면서 경쾌한 음악이 대사를 대신하는 이날 공연은 한 편의 '이미지 연극' 같았다. 무용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무대미술가 이종영씨는 "책 안에 담긴 생각·마음·기억 등을 떠올리며 무대를 캔버스 삼아 펼쳐본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불과 1시간 남짓하는 짧은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조명은 수십 번 바뀌었다. 빛은 어둠을 더 어둡게, 어둠은 빛을 더 빛나게 만들어 텍스트에 얽매이지 않은 무대 미학을 선보인 것.
먼저 김미선(25·널마루무용단 단원)씨의 '책 읽는 여자'. 이 젊은 무용가는 양 벽에 나타나는 화살표대로 쉴새없이 무대를 뛰어다녔다. "빡센 하루, 빡센 인생" 노랫말이 나오는 음악처럼 미선씨는 덩치가 산만한 곰인형을 짊어졌다 놨다를 반복하며 20대의 고된 하루를 표현했다. 벽에 휴대폰 이모티콘을 쏘아 하루의 각양각색 표정을 전하는 젊은 감각은 신선했다.
뒤이은 양혜림(35·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재직)씨의 '책 속의 여자'. 혜림씨가 다섯살 딸에게 들려준 '성냥팔이 소녀'가 모티브가 됐다. 굶주린 소녀가 할머니를 기다리다 죽음을 맞게 되는 슬픈 결말을 따뜻하게 전하기 위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설정. 배우의 몸과 움직임으로 표현된 그림자극은 오히려 무대에 색깔과 생기를 입혔다.
무대미술가와 무용가가 서로의 의도를 얼마나 잘 해석하고 접목시키느냐가 공연의 완성도를 결정한다고 볼 때 두 조합은 신선하고 젊은 상상력이 돋보였다. 객석은 많이 비었으나 관객만족도가 높았다는 점에서 6월 또 다른 만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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