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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연구가 정석 교수 "전주한옥마을 정체성·매력적인 요소 살려 개발해야"

전라감영 복원은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 도시연구가 정석 교수는 도시현장 연구 첫 작품인 서울 북촌한옥마을을 둘러보며'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자평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북촌을 지키며 사는 행복한 주민들을 만났을 때'라고 밝혔다. 안봉주기자 bjahn@

일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핸드폰에만 의지해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시대에서 대화는 더 이상 삶의 중심에 있지 않다. 소통이 단절되면 '사람'과 '사람'은 서로에게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풍경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풍경은 삶에 지친 이웃에게 위안과 힘을 주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더불어 행복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누군가에게 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준다고 믿는다. '이 사람의 풍경'을 찾아 나서는 이유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지인을 통해 미리 공을 들였다. 뜬금없는 인터뷰를 거절 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예상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명망성도 없는 저를 왜 인터뷰하는지..." 첫 질문이었다. 도시를 연구하는 가천대 정석 교수(51). 인터뷰 시작은 난감(?)했으나 끝은 유쾌했다. 명쾌하고 긍정적인 삶의 철학으로 무장한 그와의 대화가 빚어내는 풍경은 도망치다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비상구' 같았다.

 

"우리나라 도시 문제는 심각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어떻게 보면 없어도 되었을 문제거든요. 도시설계 도시계획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자책감이 크고 죄스러운 부분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의례적 말이 아니었다. 30년 가깝게 현장을 지키며 도시를 공부해온 그가 진단한 우리시대의 도시는 사면초가,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의 분석대로라면 얼마든지 회생할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함께 행복해지는 도시 만들기'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온 그 같은 연구자들의 역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터였다.

 

그는 사람답게 사는 도시의 정답이 '마을 만들기'와 '마을 공동체'에 있다고 확신했다. 오래된 편견일 수도 있지만 '도시'와 '마을'은 용어만으로 보자면 상대적 개념이다. 그 때문에 도시에서 마을을 이야기하는 간극이 커보였지만, 그가 도시연구에 바친 짧지 않은 삶의 풍경을 마주하고 보니 신뢰가 깊어졌다.

 

성남에 있는 가천대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도시 현장 연구 첫 작품인 서울의 북촌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오가며 반갑게 인사 나누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자평하면서도 가장 큰 보람을 '북촌을 지키며 사는 행복한 주민들을 만났을 때'라고 꼽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시의 도시정책에 오랫동안 참여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후반까지면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나요.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제가 94년에 지금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들어갔는데 2007년까지 서울시 도시정책을 연구했습니다. 90년대는 여러 가지면 에서 중요한 시기였죠. 정치적으로는 80년대 후반에 어느 정도 민주화가 실현되면서 민주화운동이 전국단위의 정치적 운동에서 지역운동으로 전환하는 시기였고, 93년에는 지방자치제가 시작됐습니다. 90년대 초에는 80년대에 일어났던 개발 사업이 정점을 이뤘어요. 분당 일산 등지의 신도시를 만들었지만 집값 전세 값이 걷잡을 수 없이 뛰자 정부가 용적률을 완화하고, 재개발을 양성화하는 등 온갖 규제를 다 풀었죠. 성수대교와 삼풍 아파트 붕괴사건에, 교통사고 사망자가 최고 정점을 찍은 것도 90년대인데 1년에 사망자만 13000명이나 되었잖아요. 고베 지진 때 사망자가 5천명이었으니 우리는 해마다 고베지진 같은 대형 참사가 두 번 반 정도 일어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발시대에 대한 반성과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냐 하는 각성이 일어났던 것 아닐까요.

 

"맞습니다. 각성과 대전환이 일면서 곧바로 2000년을 맞았지요. 서울시는 90년대에 각고의 노력을 했습니다. 개발시대의 도시계획을 다잡고 새로운 2000년의 도시계획을 준비했지요. 조순 시장과 고건 시장 시절이었는데 실제 여러 가지를 바꾸었어요. 용도지역을 세분화한 것도 그중의 하나인데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문화재 주변을 낮추고 저층주거지 주변은 저층으로 짓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대의명분을 내세워 지켰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이명박 시장이 2002년에 취임하면서 그런 규제들이 다 풀려버렸어요. 어렵게 다잡은 도시계획이 무너진 것이죠. 오세훈 시장 임기까지도 그랬습니다."

 

-연구 초창기 시절에는 어떤 작업을 주로 했습니까.

 

"94년부터 본격적인 연구 작업을 했는데 그때 주제가 마을공동체와 마을만들기, 도시경관 보존 같은 것들이었어요. 특히 보행공간,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다니기 좋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북촌이나 인사동 같은 오래된 동네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연구했습니다. 학교로 간 후에도 이 작업은 계속했어요. 저는 이런 일들을 전문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해요. 연구자든 교수든 도시를 공부하는 사람은 도시정책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잘 실현되도록 돕고, 역할을 해야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의무죠."

 

-많은 일중에서도 가장 애정을 가진 작업은 북촌정책이 아닐까 싶은데요.

 

"북촌은 2000년에 기본계획을 세우고 2001년에 실행에 옮긴 프로젝트입니다. 개인적으로 북촌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하는데 성과라면 한옥마을을 지켜낸 것입니다. 당시 종로구청이 북촌 한옥들은 보존 가치가 없다며 철거하고 현대적인 건물로 새로 짓는 재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동네, 오래된 가치라고 하는 것이 건물만은 아니거든요. 길과 땅, 지형, 언덕이 남아 있고 풍경과 골목이 유지되는 것이 모두 가치 있는 일이지요. 역사도시나 오래된 동네를 보존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지키는 일이 우선입니다."

 

-관청도 그렇고 주민들을 설득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는 수준 높은 의술은 무조건 수술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돌보는 것이죠.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되었다고 철거하고 뚝딱 건물 짓는 일은 수준 낮은 짓이에요. 갈등도 겪고 분쟁도 적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이 유지되면서 풍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성과입니다. 더 큰 의미는 대단위 전면 철거를 하지 않고도 서울에서 오래된 동네를 지켜내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물증으로 보여준 첫 번째 사례라는 점입니다."

 

-그 성과는 북촌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이 있지요. 그래서 그 후 북촌이 아닌 동네에서 마을 만들기 첫 번째 실험을 했었습니다. 사실 마을만들기의 의미는 철거재개발이 아닌 방식, 오래된 집이나 동네를 고치면서 유지하는 것을 말하거든요. 90년대 중요한 흐름도 그런 것이었는데, 이런 작업이 성공하려면 도시계획을 주민 주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향식 도시계획이 아니라 상향식 도시계획으로, 또 도시의 계획을 세워서 아래로 내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별로 도시계획을 세워 모아가는 방식으로 바꾸어가야지요. 이런 흐름은 90년대 서울시정의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그 철학을 실제 현장에서 입증시킨 첫 번째 실험이 북촌이었고요."

 

-절반의 실패에 대한 평가도 궁금합니다.

 

"실패는 여러 가지 있는데, 서울시의 재정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오히려 한옥의 가격이 너무 오른 결과를 만들어낸 것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북촌이 좋아서 사는 주민들은 오히려 밀려나게 된 상황입니다. 한옥과 마을의 껍데기는 지켰는데 그 안에 사는 주민들의 삶이나 공동체를 지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였어요. 지금도 북촌의 한계는 주민 커뮤니티입니다."

 

-북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시의 공무원들이 현장근무를 했다던데요. 모범적인 사례가 아니었을까요. 특히 북촌은 주거지역이어서 민원이 많았을 텐데요.

 

"북촌 정책은 2000년 초에 연구를 시작했어요. 고건 시장 시절이었죠. 그때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고시장님이 한옥을 시가 사서 보존을 하자는 의견을 내셨어요. 우선 철거되는 것이 문제여서 원칙이 흔들리기도 했죠. 연구자들이 반대했습니다. 북촌지역은 주거지역이거든요. 주거지역으로 지켜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상업화되어버리니까요. 사람 사는 집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고 관광은 그 다음이라고 강조했죠. 상업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하고 외지 사람들의 상업화는 막았어요. 그런 중요한 원칙을 세워 북촌가꾸기가 시작되었죠. 그때 공무원들이 북촌의 한옥을 사서 사무실을 만들고 현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성과가 좋았죠. 그런데 이명박 시장 들어서면서 사업부서를 주택국에서 문화관광국으로 바꾸고 공무원들도 현장에서 철수시켰어요. 대혼란이 왔죠. 다행히 임기 말에 원상 복구되었어요. 그것을 위해서 시정연구원에서 북촌가꾸기 중간 평가도 하고, 장기구상을 만들었습니다. 원상 복구된 후에 이명박 시장이 북촌에 들어가 살았죠."

 

-그런 노력에도 상업화의 흐름을 막는 일은 어렵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오세훈 시장도 취임하면서 관광객 천만을 내세웠어요. 북촌도 관광 쪽으로 드라이브를 걸었고요. 덕분에 북촌의 주거지역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구단위계획을 세워 무분별하게 용도 변경되는 것을 막아놓았던 것입니다. 외곽에는 상업공간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내부 지역은 들어올 수 없었지요."

 

-북촌과 비슷한 환경에 있는 전주의 한옥마을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향인 전북의 도시와는 인연이 없었나요.

 

"초반에 있었습니다. 북촌 연구를 시작한 것이 2000년인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주 한옥마을도 보존계획을 세웠어요. 그때 자주 내려갔었습니다. 한옥마을 규제한다고 주민들로부터 계란을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김완주 시장 시절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한영주 박사가 꾸린 전주 포럼에 참여했는데 포럼의 목표가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서 전주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자는 것이었어요. 그 첫 회의 때 제가 냈던 것이 전주한옥마을을 살리고 경전철을 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전주한옥마을도 교수님의 관심을 빗겨갈 수 없었군요.

 

"전주는 다른 도시가 갖지 못한 정체성과 매력적인 요소가 충분해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보다는 그런 자원을 살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한옥마을과 구도심이 대표적인 예인데, 한옥마을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신했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은 자주 와보실텐데 어떻습니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완전히 관광지가 되었구나하는 것입니다. 너무 번잡해졌어요. 그렇다보면 본래의 가치는 잘 드러나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유원지 스타일로 바뀌게 되죠. 그렇게 되면 그 가치에 신물이 나는 사람들은 안 오게 됩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만 붐비게 되면 수명도 그만큼 짧아집니다. 단순한 관광객들이야 다른 곳이 생기면 썰물처럼 쭉 빠지기 마련이니까요. 전주시와 주민들이 나서 지속가능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전주한옥마을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절실합니다."

 

-결국은 무산됐지만 경전철은 지금 생각해도 흥미로운 제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전철은 익산 군산까지 잇는 제안이었어요. 전주는 구도심이 작고 외곽에 새로운 시가지가 들어섰잖아요. 그래서 시민 대부분이 승용차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시가 쾌적하려면 대중교통 중심으로 도시가 유지되어야 해요. 경전철이나 노면전철이 팔달로를 다니고 백제로를 연계해 신시가지를 꿰고, 그대로 익산 군산 까지 가면 세도시가 하나의 도시처럼 상생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세도시가 경쟁할 것이 아니라 경전철을 통해 하나의 도시로 엮어 주면 대단히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전주는 전라감영 복원사업이 곧 시작됩니다. 감영복원으로 쇠퇴한 구도심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큽니다. 복원사업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복원은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역사복원이든 보존이든 그것이 건물이든 시설이든 그것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이 우선이에요. 그런데도 복원사업의 대부분이 개발사업처럼 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새로 복원하기 보다는 다시 회복 불능하게 철거되고 망가지는 것들을 막는 것이 우선입니다. 오래된 것들이 기운이 빠져 있으면 생기를 불어넣어 스스로 살아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역사도시나 역사적인 것을 살리는 건강한 방식이에요. 복원한다고 오래된 것을 재개발 하듯 드러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도시마다 역사유적을 복원하는 사례가 많이 있나요.

 

"역사도시들은 대부분 복원을 추진하고 있죠. 예전에는 개발이 주된 관심사였다가 역사가 관심사가 되었잖아요. 또 그것이 관광과 맞물리기도 하구요. 서울도 마찬가지인데, 오세훈 시장 시절 남산 쪽 성곽을 복원했는데, 이런 경우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도시는 어느 한 시대에 만들어져 그대로 보존해온 것이 아니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삶속에서 변해온 것입니다. 필연적인 변화죠. 한양도성도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전쟁이 나고 사람들이 피란을 가고 다시 사람들이 도시 안에 들어오면서 숱한 변화가 있었겠죠. 문화재를 대할 때 그런 변화를 얼마나 진실 되게 받아들이고 겪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느냐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망가진 것들을 서둘러 복원하는 것은 진실 되지 않는 일이죠. 세계문화유산도 두 가지 가치를 존중합니다. 진정성과 완전성이예요. 서로 상반된 것 같지만 얼마큼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 완전성이고, 그것이 진실된 것이냐 하는 것이 진정성이거든요. 복원을 한다해도 진실성이 없으면 가치는 없습니다. 깨진 것 상처받은 것이라해도 진실된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서울 북촌한옥마을·인사동 지키기 프로젝트 추진

 

정석 교수는 전주한옥마을의 번잡해지는 풍경을 경계했다. 서울의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지키기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그에게 전주한옥마을의 급작스러운 상업적 성장은 이미 경험했던 노정이었다. 오래전부터 귀향을 꿈꾸어온 그로서는 고향 전주의 달갑지 않은 변신이 반가울리 없었다.

 

그는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 동중과 전주고를 졸업했다. 서울 공대에 입학해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2학년 학과 배정때 도시공학과로 옮겨 탔다. 지금은 어느 한사람을 위한 멋진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터를 돌보는 도시연구자가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도시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공부이고 삶의 공부라고 믿는 정교수는 도시공부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겸허하게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신념은 그를 줄곧 현장을 지키게 하는 바탕이 됐다.

 

90년대 초반부터 13년 동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가슴 설렐 정도로 신나게 일하면서 한강 경관을 비롯한 도시경관,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마을만들기, 북촌과 인사동 보전 등 여러 도시의 설계 연구를 진행했다. 1995년에는 서울시 보행환경을 연구해 보행조례제정을 이끌어냈으며 시민운동에도 관심이 많아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도시연대) 창립에 참여했다. 2004년부터 동북아도시연구센터장을 맡아 북한과 중국의 도시를 연구했으며 2007년 가천대 도시계획학과로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 저서 외에도 〈세계의 도시디자인〉 〈집은 인권이다〉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 등의 공저에 참여했으며 도시문제를 연구하고 고민한 글을 모은 저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효형출판)를 다음 주에 출간한다. 스승의 날인 15일, 도시공부와 연구의 즐거움에 눈뜨게 해준 스승(주종원 교수)께 헌정하기 위해 열정을 쏟은 책이다.

 

큰 도시의 도시계획 전문가 역할보다는 작은 도시에 살면서 주민들과 같이 마을 공동체를 살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그는 그 때를 위해 10년 전부터 주말농사를 짓고 목공공부를 하고 있으며, 사물놀이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바람은 '참한 도시' 전주에서 자신이 소망하는 모든 일들을 이웃과 더불어 해나가는 것. 개인 블로그 '정석의 걷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동네'에 그의 행복한 일상이 촘촘히 담겨있다. 박사논문으로 전라북도 촌락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항공 촬영이 필요한 배치도를 진행할 엄두가 안나 포기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는 그는 숨 가쁘게 살지 않고 속도를 좀 늦추어 전북 지역을 두루 다니며 연구하는 일도 마음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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