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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에 대하여

▲ 이향미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운영팀장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우리 마을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루지고 있다. 행사가 많다 보니 만드는 사람도 많고, 즐기는 사람도 많고, 지시·감독하는 사람들도 많다.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불쾌한 나들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만드는 사람들 또한 열심히 만들었는데 정작 만드는 과정이 아닌 선보이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일이 많다.

 

제한된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 함께 즐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된 규칙이다. 이런 규칙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가 발생하거나 과부하가 생기면 꼭 등장하는 말이 '융통성'이다. 아울러 이런 규칙을 무너트리기 위해 등장하는 말은 '특별함'과 '형평성'이다. 특별함의 논리와 형평성의 논리 속에서 규칙을 지키고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난위도의 작업인지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우리 공간에서 가장 많이 생기는 말은 '특별함'이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특별하니까 입장해도 충분히 작품을 소화해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단체에 비해 특별하니까 전업예술가 못지않은 기량을 지녔고 그러기에 무대에 설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이면에는 다시 '형평성'과 '일관성'을 주장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 아이는 되는데 왜 내 아이는 안 되는가? 저 단체는 되는데 왜 우리 단체는 안 되는가? 지난번에는 가능했는데 왜 이번에는 안 되는가?

 

융통성(融通性)이란 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이리저리 막힘없이 잘 처리하는 재주나 능력을 말하며 신축성, 변통성, 주변성, 탄력성이란 말과 관련이 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유도리(ゆとり)라는 일본 말도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될 정도로 폭넓게 쓰이는 말이다.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지시·감독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융통성 없이 처리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지금 당장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한 것은 융통성 있게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다. 특별하게 대접받았다는 고객의 만족과 잡음없이 해결했다는 스탭의 안도감을 동시에 해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융통성만이 우위에 서는 조직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우리에게는 특별함을 요구하는 소수보다 일년내내 우리 공간을 찾아오는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규칙보다 융통성을 더 우위에 두는 사고방식을 가졌을까? 아마도 우리의 내면에 거절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심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규칙을 적당히 어기고 특별하게 대접받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잠재적 심리도 있을 것이다. 4000명이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관자의 특별한 배려로 새치기해서 들어갔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끼거나 나도 저런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만연해지면 더 이상 규칙은 힘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 만드는 사람들이나 진행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특별하지 못한 사람들'의 항의를 거칠게 받을 것이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허탈할 것이다. 이러기에 규칙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며, 이런 엄격한 규칙위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융통성은 필요해지고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 공간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다 특별한 손님들이다. 특별한 손님들이기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여 기쁨을 느끼고 즐기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누구 하나 소중한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우 받았다는 상황에서 기쁨은 배가 되는 법이다. 느리고 더디게 가지만 그것이 결국 모두가 다 함께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새삼 다가오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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