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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으면 역사가 보인다' 새롭게 각인시켜

영조시대 조선팔도 353개 고을 조망한 '여지도서' 완역

변주승교수에게 고전번역은 지난 18년 동안 일상의 한 중심이었다. 그의 부친은 호남의 대표적 한학자인 산암 변시연 선생(1922~2006).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학의 학풍 속에서 성장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고전번역의 길에 들어선 이후 30대와 40대의 학문적 열정을 오로지 번역에만 쏟았다.

 

고려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난 직후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지속된 그의 작업이 일군 고전 번역의 숲은 깊다. 첫 작업은 오롯이 개인적으로 일궈냈던 '신유박해' 사료집. 그 후 동료들을 규합해 번역팀을 만들어 이어낸 작업으로 '대한계년사' '여지도서' '추안급국안' 등이 번역의 옷을 입었다. 모두가 고전을 읽는 일이 곧 역사를 읽는 일임을 새롭게 일깨우는 귀한 사료들이다.

 

고전번역원의 '동서양 명저사업'으로 진행했던 '대한계년사'는 대한제국시대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이 조선총독부가 만든 것인데 반해 고종의 비서실장 격이었던 정교가 직접 기록한 대한제국의 말년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료다. '여지도서' 는 영조 시대 조선팔도 353개 고을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인문지리서. 조선왕조가 국가차원에서 조망한 마지막 인문지리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번역하는데 변교수는 특별히 공을 들였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작업은 지도의 복원. 빠듯한 예산에 지도 복원을 중심으로 들여놓는것에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으나 변교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지도를 번역해 놓지 않으면 후대 사람들이 읽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역시 번역을 마무리한후 출판을 위한 교정 작업까지 마친 '추안급국안'은 우리 역사의 새로운 보고라 할 만큼 흥미로운 사료다. 조선시대, 반역 등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사건의 심문기록을 통합해놓은 이 자료는 선조대부터 고종대까지 범죄자들을 직접 심문하면서 옆에서 적었던 속기록. 변교수는 '추안급국안'의 두 가지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이 갖고 있는 한계를 벗고 조선시대 법제사 정치사 사회사를 밝히는 사료적 가치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생활사의 보고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중세국어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국어사로서의 가치다. 오는 가을 출간될 예정인 이 사료는 분량만도 90권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 또 한번 번역의 지형을 바꾸고 역사 연구의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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