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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립 문화예술단체 활로 찾기 ⑥ 전북도립미술관 현주소

관장 임명·소장작품 구입 놓고 매번 잡음 / 서울관 대관에 그쳐 작가 중앙 진출 한계

▲ 도립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해설요원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전북일보 자료사진
"공공미술관이 제대로 하면 지역 미술계는 반 이상 잘 굴러간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공립미술관이 지역 미술계에 부여된 책임감은 막중하다는 뜻이다. 반면 이는 공립미술관에 애정을 게을리 하면 전북 미술은 망가진다는 말도 된다. '관립 문화예술단체, 활로 찾기'에서는 내년이면 개관 10주년을 맞는 전북도립미술관의 현주소와 방향성을 살펴본다. 도립미술관의 공공성은 행정력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미술계·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쥐어짜는' 예산·인력으론 미술관 자생력 갖추기 힘들어= 도립미술관의 기능 중 하나는 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전북의 척박한 창작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지역 미술계의 기대는 대개 다음과 같다. 미술관과 작가와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작품들을 수집해 지역 미술의 자생력을 높이는 것. 그러나 지자체의 이해 부족은 전문인력·예산 부족이라는 보편적인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3년 간(2011~2013년) 도립미술관 예산은 22~26억 안팎. 같은 기간 매년 6~7회 기획전에 고작 2억7000여 만원(세계미술거장전 제외)이 투입됐다. 도립미술관이 최근 4년 간 꼽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은 '채용신과 한국의 초상미술'전과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의미있는 시도로 간주된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등이다. 전자는 외부 기획자의 힘을 빌리긴 했으나 초상미술의 미학적 전통을 한눈에 살필 수 있었던 기획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유도해냈고, 후자는 '2012 전북 방문의 해'를 맞아 전북 최초로 세계 거장의 작품을 불러모은 기획전으로 의미가 있었다. 이흥재 현 관장이 나름대로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기획력을 강화시키고 관람객 증가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해마다 2~3억 씩 투입되는 미술관 소장작품 구입에 대한 지역 미술계의 불만이 적지 않다. 전문성을 요하는 작품 구입은 치밀한 기획과 미술인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토대로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가 봉쇄되면서 근거없는 소문으로 지역 미술계가 얼룩지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다. 미술관 소장품 구입에 대한 중장기적 비전이 필요하고, 작품 선정을 둘러싼 잡음을 없앨 수 있는 투명한 절차가 요구되고 있다.

 

△'행정 입김' 좌우되지 않도록 신분 보장돼야= 공립미술관은 때론 지역 문화예술의 토양이기 보다는 문화정치의 전장이 될 때가 많다. 매년 도립미술관 관장 임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한 단면이다. 2009년 부임한 이흥재 관장은 사진작가이나 최효준 前 관장과 달리 지역 여론을 잘 다독일 수 있는 적임자로 간주 돼 발탁된 케이스다. 그러나 관장을 포함해 학예실장이 5급 상당 5년 계약직(재임용 가능)으로 신분 보장이 없어 미술관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2004년 개관 초기 2명 학예사가 일반직 공무원, 2009년 선임된 관장·학예실장·학예사 등 3명이 계약직 공무원으로 관장을 제외하면 학예직 인력은 총 4명에 그치는 상황. 예산 대부분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고 채용기간 연장이 걸려 있는 도립미술관 관장·학예실장 등은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는 기획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올해 재추진했다가 무산된 세계미술거장전만 놓고 봐도 도는 정책 의지가 있음을 강하게 비쳤고, 눈치를 살피던 도립미술관은 관람객이 보장된 상업성 전시 보다는 지역 미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전시를 요구하며 반발한 지역 미술계와의 입장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뺐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도립미술관 학예사들의 큐레이팅이 담보되지 않는 세계미술거장전은 기획사의 배만 불려주고 학예사들이 다양한 기획력을 펼칠 기회를 줄어들게 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이었다. 개관 때 공무원 신분으로 고용된 일부 학예사들이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니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립미술관이 세계미술거장전에 기대는 듯한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잃을 게 더 많은 선택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이흥재 관장은 "일부 학예사들이 학부는 다른 전공을 했더라도 관련 분야에서 석사과정에서 밟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으나, 학예직 업무가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지역 미술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오는 지적 같다"고 설명했다.

 

△작가 전방위 지원 위한 창작스튜디오 건립 절실= 지난 5월 개관 3주년을 넘긴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은 하루 평균 200여 명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작품 수준이 들쭉날쭉 해 작가들의 경력용 전시장에 그치고 있어 작품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도립미술관은 임대료 부담으로 무작정 비워둘 수 없는 데다 지역 미술인들에게 서울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본래 취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7월까지 도립미술관 서울관을 거쳐간 도내 작가는 943명.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은 작가들의 작품 판매가 매년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10점(2090만원), 2011년 184점(6억1455만원), 2012년 257점(6억2183만원)을 기록했고, 올해도 벌써 615점(4억2060만원)을 넘겼다. 일부 기획자들의 눈에 띄어 지역 작가들이 다른 지역 미술관 초대가 간간히 이뤄지고 있으나 서울 작가군에 합류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 이를 위해선 단지 전시를 열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작가들의 큐레이팅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 확보가 절실해 보인다.

 

도립미술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창작 스튜디오가 없는 오명(汚名)을 안고 있다. 전북도가 지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은 대개 사립미술관이 하고 있고, 지역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해 중앙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할 도립미술관은 이상하리만큼 레지던스 관련 논의에서 배제돼 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선정된 미술가 조해준처럼 지역 미술인의 등식에 갇히지 않고 전국의 '스타 작가'로 거듭나려면 창작 스튜디오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창동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은 난지스튜디오, 경기도미술관은 경기창작센터를 보유하고 있고, 광주시립미술관도 서울 분관 외에 중국 베이징에 창작센터를 개관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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