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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조기호(趙紀浩) 편]육자배기로 해원한 전라도 시인

▲ 조기호 시인
전주 출생 조기호(1938~)시인의 시는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고향 산천과 그 속에서 속터지는 가슴앓이로 질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정한(情恨)을 투박한 전라도 방언에 담아내고 있는 육자배기와 같은 서사적 서정의 세계라 하겠다.

 

잎담배 써럭초도 떨어져

 

삿자리 구석을 뒤져서

 

마분지 꽁초를 다시 말아 피우며

 

일 년 새경 일곱 섬짜리 머슴은

 

하현달 담긴 소매 항아리에다

 

총각을 내어놓고 부르르 떨며 참선을 합니다.

 

- '새·14-참선'에서

 

'써럭초','삿자리'. '소매 항아리' 등 향토적 토속어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새경이 '일곱 섬짜리'면 열예닐곱 살쯤 되는 새끼 총각으로 한참 힘이 불끈 불끈 솟을 나이이다. 세상에 호기심도 많을 때, 아래채 사랑방(머슴방)에서 상머슴들을 따라 써럭초 담배도 말아 피워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새벽녘 양기를 '하현달 담긴 소매 항아리'에다 쏟아 부으며 '부르르 참선을 한다'고 한다. 시골 총각 머슴아이의 솟구치는 생명감이 마치 김홍도의 옛 풍속화를 본 듯 정겹기 그지없다.

 

겨우 아지랑이 배냇 눈 뜬 이른 봄날

 

외상값 많이 달린 술청에 앉아

 

손님상에 내보낼 풋마늘을

 

우리 텃밭에서 한 소쿠리 뽑아다 주겠다며

 

술집 아가씨를 얼러서

 

몽땅 훔쳐다 놓고

 

여릿여릿 톡소는 풋마늘 대궁을

 

찹쌀고추장에 쿡 찍어

 

술 한 잔 맛나게 깨무는 판에

 

수금 나갔다 돌아온 주인 여자

 

야! 이 썩을 년아

 

그 화상 낯바닥을 좀 봐라

 

저 웬수가 텃밭에 마늘 농사 지어먹고 살

 

위인 짝으로 보이냐?

 

에라이 오사서 빼 죽일녀러 가시내야, 쯧쯧

 

악담을 퍼붓더니만

 

술상 모서리에 털푸덕 주저앉으며

 

아, 목말라, 어여 술 따라 이 도독놈의 화상아

 

빈 술잔을 불쑥 내미는

 

저 웃음 베어 문 낯꽃이라니

 

- '풋마늘' 전문

 

참, 능청스럽고도 질박한 전라도 반어법과 역설이 난무한 어느 시골 주막집의 풍경이다. 겉으로는 저리 쌀쌀 맞고 매몰차게 몰아세우지만 속으로는 저 화상을 그리 미원하지 않는 것만 같은 주모의 속내가 엿보인다. 이러한 서사적 풍경의 토속 세계와는 달리 그의 남다른 직관력을 엿보게 하는 간결한 울림의 서정시도 조기호 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9·28 수복하던 밤

 

어디선가 대포소리 쿵 쿵

 

뒤 쫓아 오고

 

아버지 마중 나간 신작로에

 

파르르 떨고 섰는

 

어린 소년병

 

- '코스모스·1' 전문

 

6·25 때 좌우익의 틈새에서 집을 나가셨던 아버지, 아니 집을 비우셔야만 했던 아버지. 화자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아버지를 찾아 밤중에 마중을 나간다. '마중나간 신작로에/ 파르르 떨고 섰는/ 어린 소년병'과. 가을 밤 '길가에 서 있는 코스모스'는 정서적 등가물이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6·25를 전후한 이 땅 민초들의 아린 정서와 한 그리고 개인사적 아픔이 동시에 배어 있다, 그것을 마치 무당이 씻김굿이라도 해주듯이 때로는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내고 있는가 하면, 때로는 남다른 직관력으로 사물의 본질로 직통하는 이미지즘적 감성의 서정 세계가 공존하면서, 우리가 한동안 망각의 강가에서 잊고 살았던 한국적 정서의 원형, 곧 집단 무의식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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