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 고 황규언 선생 계보 이어 / 화려한 가락·멋드러진 춤사위 최고
"25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었습니다. 행복, 기쁨, 아픔, 고됨의 연속이었지만 그 세월 속에서 굿을 통해 만난 인연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참으로 큰 행복이었습니다"
고창농악보존회 이명훈 회장은 1968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에서 태어났다. 1989년 서울예대에 입학하여 민요동아리(임실필봉농악, 이리농악 전수) 활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굿쟁이 수업을 받게 됐으며, 1991년 전북 무형문화재 제7-8호 고창농악 상쇠 기능보유자 고(故) 황규언 선생과 60세에서 80세까지의 원로선생님들을 만나면서부터 고창농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 후로 25여년의 세월동안 고창농악을 배우고 익히며 고창농악보존회를 다지고 고창농악 전문교육기관인 고창농악전수관을 운영하며 고창군민, 전국의 젊은이들에게 문화생활로써 고창농악의 저변확대에 힘쓰고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이명훈 회장은 90년대 초. 고창농악을 전수하려는 고 황규언 선생을 비롯한 고창농악인들과의 첫 만남을 계기로 고창농악의 계보를 잇게 됐다.
이 회장은 고창만의 색깔있는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여러 가지 공연, 체험, 교육사업이 이루어지길 희망했으며,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자 했다. 고창농악보존회장의 자격이 아닌, 전문 굿쟁이로서의 예인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이 회장의 고창농악사랑은 그가 이룬 많은 결실들로 나타났다. 1994년 제12회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1996년 일본 아마기시 축제 초청공연(설장구), 1998년 제24회 전주대사습놀이 농악부문 장원, 광복 60주년 기념 한러 유라시아 대장정 풍물공연팀 참가(상쇠), 2007년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2개국 순회공연(예술감독, 상쇠), 2008년 서울 국제무용축제 개막공연 '처용굿' (상쇠), 2011년 제14회 서울세계무용축제 '풍무-고깔소고춤'(총감독) 등이 그가 이룬 결실들이다. 또한 '굿과 사랑에 빠지다', '고창농악·고창의 마을굿', '고창농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 예술세계' 등 다수의 저서도 그의 농악사랑 결실이다.
이 회장은 특별히 지난 2009년부터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진 고창만의 소리, 가락, 몸짓을 활자로 정리 100여년의 대기록을 집대성해 후대에 이르기까지 고창농악의 가치를 보존·전수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명훈 회장의 오랜 꿈은 소박하지만 정취 있는 흙집과 한옥들을 만들어 그곳에서 글을 쓰는 사람과 춤을 추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조각을 하는 사람, 굿을 치는 사람 그리고 오래도록 황토빛 흙을 일궈온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항상 굿이 함께 하는 굿치는 마을을 이루어 살고자 하는 이 회장의 꿈이 꼭 이루어 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사)고창농악보존회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 보유단체다. 고창농악은 호남우도지역에서 발달된 농악으로 고창, 영광, 장성을 중심으로 한 영무장농악의 맥을 정통적으로 잇고 있으며, 박성근, 김만식 등 전문예인들 중심으로 완성된 판굿, 문굿, 풍장굿, 도둑잽이굿, 매굿 등 굿의 형태가 원형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부포놀이, 설장구놀이, 통북놀이, 고깔소고춤, 잡색놀이 등이 화려한 가락과 함께 멋드러진 춤사위로 남아있는 오늘날 최고의 무형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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