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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김용관(金鏞官) 편]몸으로 시를 쓰는 공성(空性)의 시인

▲ 김용관 시인
정읍시 출신(1942~)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삼남일보'에 시를 발표했고 이후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 '한국시'로 등단. 정읍종합여자고등학교, 배영종합고등학교, 백산고등학교, 능주중학교 등 전남북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다 명예 퇴직하였다.

 

하나의 실꾸리가 다 풀리듯

 

마지막 계절이 풀려 나간다.

 

그만한 길이로 머물다가

 

그만한 부피의 공간으로

 

그만한 시간의 흐름으로

 

잘도 감기고 풀린다

 

한 타래기가 풀려 감은

 

한 타래기를 감기 위함이요

 

마냥 그럴진대

 

내 인생에서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셈하며 살리오.

 

- '세월의 끝에서' 일부

 

어김없이 변전하는 계절과 그것의 반복성, 그것이 '가고', '오고', '감기고', '풀리면서' 생멸(生滅)을 거듭하고 있다는 불교의 무상성(無常性)을 바탕으로 생(生)을 관(觀)하고 있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 그러기에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정신과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생(生)은 '쉼 없는 물살'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가고 있다고 한다. 그저 의미 없이 사라져 가는 게 아니라 마치 파도가 칠 때 앞의 물결이 뒤의 물결과 맞물려 연기(緣起)되어 있다는 인식 아래, 그는 생의 허무, 곧 무상성에서 깨어나 자유로운 존재자가 되기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곧 관(觀)이다. 그것은 현재의 대상에 따라가지 않으면서 또한 과거사에 안주하여 매몰되지도 않고, 미래의 불투명함에 불안하지도 않아 늘 깨어 있는 불망실(不忘失)의 세계요, 지관(止觀)의 경지라 하겠다.

 

마음속에

 

'둥글다'는 형용사 하나

 

언제나 둥글게 나를 보호하고 있다

 

나갈 수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는 원 속에

 

이미 갇혀 버린 사랑 하나

 

만일 말이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둥근 원 속에

 

사랑이 빠져 나가버리면

 

나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 '만일 말이다' 전문

 

우주의 질서와 이법을 하나의 원(圓)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둥근 원을 불교에서는 '일원상(一圓相)'이라고 하는데, 이 원(圓)은 우주만유의 본원 또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법(法)'을 상징한다.

 

원(圓)은 0도에서 시작해 90도와 정 반대의 위치인 180도를 거쳐 360도 원 위치로 다시 돌아온다. 이 지점은 처음의 0도와 똑같다. 그러나 처음의 0도의 지점과 180도를 지나 다시 돌아온 360의 지점의 정신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마치 성철 스님이 인용해 더욱 유명해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3단 수행 과정과도 같은 출출세간(出出世間)의 경지이다.

 

0도가 깨침 이전의 집착과 분별·미혹의 단계(世間)라면, 180도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닐 수 있다'는 부정의 단계(出世間)이고, 이 부정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안과 밖이 하나가 되고,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절대 긍정, 원융무애의 세계가 360도의 세계(出出世間)라 하겠다.

 

2003년에는 동해안 일대를, 그리고 2006년에는 서해안을 떠돌면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알고부터 바람과 구름과 물과 흙과 버무려 사니 이처럼 행복 할 수 없다."며 승합차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며 마치 김삿갓처럼 온 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 그가 김용관 시인이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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