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의 마지막 사흘을 해남의 미황사에서 보냈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표방한 이 사찰은 갈 때마다 불사로 모습이 새롭다. 처음 찾았을 때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었던 것이 점차 변모하여 당우(堂宇)들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지금도 불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멀어서 그렇지 위치 또한 절묘하다.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만큼 땅끝마을을 표방한다. 여기에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해발 500여 미터의 달마산은 높이에 비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암괴석으로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능선은 그래서 미답의 공간이다. 또 응진전에서 바라보는 낙조를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노란 색의 세 가지을 지닌 미황사의 제1경이 바로 낙조다.
미황사는 휴가의 끝자락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비용이 결코 저렴한 게 아니다. '나를 찾는 수행' 같은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50만원을 내야한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일까?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보살님 말로는 이른 바 '힐링' 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이곳까지 오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진정 치유가 될까?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에서 잠시 피신해 있는 쪽과 또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치유란 무엇일까? 아니 그 치유라는 게 일상을 살아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 가당한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필자는 올해부터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른 바 인문고전 100권 프로젝트다. 다시 살아야 할 날들을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문고전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그중 한권인 〈장자(莊子)〉를 이 여름에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간서치(看書痴) 이덕무가 말한 "오직 책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도 더위도 주림도 아픈 줄도 아주 몰랐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였다.
장자는 지금부터 2300여 년 전의 사람이다. 그 시대의 사람과 교감이라니 일단 신나고 신기한 일이다. 전국시대 사람인 그는 한 때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칠원리(漆園吏)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명리를 쫓는 일이 덧없음을 알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가 지은 〈장자〉는 빼어난 상상력과 탁월한 어휘 선택, 그리고 웅장하면서도 월등한 기개를 담고 있다. 또 문장마다 우의(友誼)가 풍부하여 생동적이면서 사변성이 아주 강하다.
〈장자〉는 진정으로 자유에 이르는 길을 담은 '소요유(逍遙遊)', 만물이 나와 하나임을 밝히는 '제물론(齊物論)', 그리고 욕망을 벗고 지극한 즐거움에 이르는 '양생경(養生經)',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외화(外化)하되 본질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간세(人間世)', 그리고 대도는 어떤 거리낌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논대도(論大道)와 천하는 관리할 수 없으니 그대로 둬야 한다는 '정치관(政治觀)' 등 총 6장으로 이뤄졌다.
위에서 간술한 내용은 그야말로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에는 어려운 사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우화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장자〉는 철학서이자 위대한 문학 작품이다. 곤붕의 비상이나 장주지몽, 조삼모사, 정저지와, 포정해우 등의 우화들을 읽다보면 재미는 물론 새로운 깨달음으로 마치 송곳으로 머리를 쪼는 것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 더위를 느낄 짬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힐링이란 잠시 휴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찾고, 또 조용한 산사를 찾아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치유의 길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잠시의 도피일 뿐이다. 〈장자〉는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평화로 진정한 치유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책인 것이다.
※김판용 시인은 1991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꽃들에게 길을 묻다'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고창 흥덕중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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