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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남 호남오페라단장 "오페라운동은 예술로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통로"

▲ 호남오페라단을 창단해 28년동안 이끌어온 조장남 단장은"정신없이 뛰어온 그 과정이 내 인생이 되었다"며 "돌이켜보면 즐거움보다는 고통의 시간이 훨씬 길었으나 그 고통을 감내하며 지켜온 오페라 무대위의 삶이 결코 후회스럽진 않다"고 말했다. 안봉주기자 bjahn@

유럽의 여름은 축제로 끓어오른다. 더위를 피해 시민들이 휴가를 떠난 도시는 몰려온 관광객들이 쏟아놓는 열기로 여름을 난다.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은 이 도시들의 축제다. 그 축제의 중심에 오페라가 있다. 올 여름, 두개의 축제를 만났다.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와 장크트마르가르텐 오페라 축제다. 브레겐츠 축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끼고 있는 보덴 호수가 무대고, 장크트마르가르텐은 브라겐란트주의 작은 마을 장크트마르가르텐의 채석장이 무대다. 공연장이 된 공간의 특성만으로도 관심을 모으는 이 축제는 한 달 남짓 열리는 축제 시즌 동안 연일 객석이 가득 찬다.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축제'로 꼽히는 명품 축제 '브레겐츠'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터넷 검색으로도 그 이름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 축제로서도 역사가 짧은 '장크트마르가르텐'의 오페라 공연에도 매진 행렬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호사스러웠던 축제기행을 다녀온 며칠 뒤 눈에 띄는 기사를 읽었다. 호남오페라단의 '루갈다'가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산실지원사업에 우수작으로 선정됐다는 내용이었다. 호남오페라단은 전주에서 활동 중인 민간오페라단이다. 지난 86년에 창단했으니 올해로 28년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첫 오페라 무대는 '나비부인'. 1937년 5월 서울에 있던 부민관에서 공연된 것이 오페라 공연의 시작이니 그 시점으로부터 치자면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는 66년에 그친다. 길진 않아도 충분히 정착할 수 있는 역사지만 양식의 특성, 서양음악에 대한 선입견, 특정한 계층의 예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오페라는 대중적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거치면서 발전 계기를 맞기도 했지만 뒤이은 뮤지컬의 성장으로 힘을 잃어야 했던 것은 아쉬운 국면이다. 수많은 오페라단이 무대 위에서 사라지거나 제작비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근근이 무대를 올리는 것이 한국 오페라 문화의 현실인 점을 감안한다면 호남오페라단의 존재는 주목받을 만하다.

 

호남오페라단을 만들고 오늘까지 이끌어온 조장남 단장(63)을 만났다. 청중을 감동시키는 좋은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던 30대, 열정으로 뛰어들었던 오페라 운동의 노정에서 꼬박 30년을 보낸 그는 어느새 환갑을 지나 초로를 맞고 있다. 온전히 호남오페라단의 역사에만 놓여있는 삶의 궤적이다.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오페라 가수의 꿈을 버리면서까지 오페라단의 생명을 이어온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선택한 예술이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었겠냐"고 답했다. 목표는 명료했으나 그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니 굴곡이 심하다. 부침이 큰 만큼 실망과 좌절의 상처도 길게 남았지만 그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무모했던 도전'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도전이 지역 오페라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려와 비판보다는 기대와 격려로 호남오페라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반가운 소식 들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결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오페라단이 지역의 틀을 벗어나는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제작비 걱정 없이 제작할 수 있게 된 기쁨도 있지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새삼 용기가 납니다."

 

-이번에 선정된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가요.

 

"2013 '국립오페라단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 제작지원' 공모사업입니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창작오페라 '루갈다'가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어요. 지난 9일에 시연을 겸해 최종 심사를 받았는데 최고점수를 받았죠. 제작비 2억 5천만 원을 지원받고 공연장까지 제공받습니다. 12월 공연이에요."

 

-'루갈다'는 이미 공연을 여러 번 했었죠. 몇 년 전에도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루갈다는 2004년에 첫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때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품입니다. 대본과 작곡을 새로 진행해 지난해 10월에 완성했어요. 2004년 작품은 스토리를 강조하려다보니 너무 설명적이라는 평이 있었어요. 이번 작품은 동정 부부의 내면을 긴밀하게 담아내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보완한 것이 아니고 루갈다의 새로운 버전이랄 수 있겠군요. 루갈다는 명실공히 호남오페라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이 작품은 이미 2014년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으로 결정되어 있어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내년 5월쯤 공연하게 됩니다. 그 활동을 바탕으로 내년 연말엔 이태리 로마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로마 쪽에서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 잘 진행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너무 한꺼번에 행운이 몰려오는 것 아닌가요.(웃음)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이런 기회를 받아들여야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무대의 경계를 벗고 오페라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만큼 긴장도 되고 자극도 됩니다.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예요."

 

-뒤돌아보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감개무량(?) 할 것도 같고요.

 

"올해 창단 28년을 맞았는데, 여건은 좀 나아졌다해도 환경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오페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체 활동을 지지해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반가운 변화죠."

 

-그래도 오페라라는 특수한 양식의 공연무대가 갖는 대중적 한계가 아직은 커서 오페라 운동으로서의 성과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일정한 관객에 객석을 의존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요.

 

"물론입니다. 그래도 우리지역의 오페라 고정 팬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내 판단으로는 1500명 정도의 고정 팬들이 지속적으로 공연을 지켜주는 것 같아요. 서울의 오페라 공연 고정 팬을 3000여명쯤으로 잡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지역의 대중적 확산이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습니다."

 

-호남오페라단의 28년 역사가 일궈낸 몫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북의 오페라 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한 것 아닌가요.

 

"지역 오페라는 대구가 활발합니다. 관립과 민간단체가 공존하면서 오페라문화를 잘 이끌어갑니다. 오페라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시민들의 인식도 높죠. 전북도 대구보다는 뒤지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특별한 편이죠. 한때 관립오페라단도 있었잖아요."

 

-전북도립오페라단이 있었군요. 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불과 3년 만에 해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원을 받는 관립은 없어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운영하는 민간단체는 살아남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전북도립오페라단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누구였겠습니까. 저 역시 앞장서서 도립오페라단 창단을 지원했었죠. 관립과 민간단체가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환경이 없지요. 단 그 둘의 관계는 서로 보완하고 지지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지역의 성악 인구라야 빤하잖아요. 더구나 오페라 무대에 설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한정적이죠. 그러니까 좋은 가수를 발굴하고 그들이 안정된 생활여건을 갖게 되면 민간단체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선순환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재정적 지원은 어땠나요. 관립에 대한 지원만큼은 아니더라도 민간단체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했을 것 같은데요.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면 그것이 당연하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지금도 관립예술단체를 갖고 있는 자치단체 중에는 대부분이 '우리는 관립만 잘 운영하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단체장의 인식과도 직결되는데, 그런 경우 민간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지원해야 하는데 민간은 뒷전인 상황이 되죠. 문화는 편식해서는 안 됩니다. 관립은 관립대로 역할이 있고 민간단체는 또 그들대로의 역할이 있습니다. 민간단체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북돋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요. 균형 있는 정책과 민간 예술단체에 대한 '인큐베이팅'은 자치단체의 직무입니다."

 

-도립오페라단이 없어진 후에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나요.

 

"아니었죠. 제 기억으로는 당시 도립오페라단 예산이 3-4억 원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민간 오페라 제작에 1억 원도 안 되는 예산이 지원됐었고, 그나마도 금년에는 못 받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를 활성화시킬 좋은 통로만 없어진 셈이죠."

 

-그래도 초창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군요. 호남오페라단에 앞서 전북에 또 다른 민간 오페라단이 있었죠.

 

"전주시향을 지휘했던 유영수교수님이 만든 전북오페라단이 있었어요. 창단 작품 올리고 후속 작품을 올리지 못했죠. 경제적 후유증이 워낙 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오페라 운동에 용기를 낸 것도 전북오페라단이란 싹이 있었던 덕분이에요. 그 맥을 직접 잇진 못했지만 오페라단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척박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당시 임옥경 김용진 조성민 박상규 송성태 선생 등 당시 활동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마음을 모았고, 클래식 음악운동에 앞장섰던 유승국선생님, 이정태 천길량 선생님께서 정신적으로 지원하고 성원해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작품 한편 제작하는 일이 더 어려웠을 텐데요. 제작비라도 건 질수 있었나요.

 

"그랬다면 제가 지금까지 단장을 하고 있지 않아도 되었겠지요.(웃음) 해마다 제작비 마련하느라 전쟁을 치르는데 속칭 '똔똔'이라도 맞출 수 있으면 맞추면 성공이라고 하죠. 대부분이 적자였어요. 그래도 초창기에는 서로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만드니 고정 단원들에 대한 개런티 등 기본적인 경비에 대한 부담이 적었어요. 기억으로는 당시 제작비가 1500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군요. 지금은 어림도 없죠. 통상 한편 제작에 3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오페라단의 재정적 자립은 아직 어려운 일이겠군요.

 

"털어놓자면 안고 있는 부채가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안게 된 부채지요. 어떤 해인가는 작품을 두개나 올렸는데, 한편에 2500만원의 적자가 났어요. 두개 공연 모두 그렇게 되니까 암담해지더군요. 그래도 이상한 것이 늘 다시 일어서게 되거든요. 무모한 용기죠.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구요. 그래도 암울하진 않습니다. 길이 보이잖아요. 이 길을 열기위해 쏟은 투자라고 생각해야죠."

 

-그런데 오페라 운동의 대중화는 여전히 먼 길 아닌가요. 그것이 꼭 재정적 여건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오페라가 갖고 있는 거리감을 좁히는 일이 과제예요. 오페라는 어려운 것이고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절실합니다. 예술장르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오페라입니다.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장르가 다 결합되어 있잖아요.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에도 오페라만큼 좋은 양식이 없습니다."

 

-우리 음악의 접목은 특히 호남오페라단의 돋보이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적 오페라 창작은 호남오페라단이 지향해온 중요한 작업이죠. '논개' '춘향' '심청' 등 창작품 대부분이 국악을 접목한 작품이었어요. 창작판소리와 국악기를 음악적 소재로 들였죠. 국악과 양악은 음악적 어법상 잘 맞지 않지만 상충되지 않게 잘 융합하면 깊은 감성적 호소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창작품들이 호평 받았던 것도 그 덕분이죠."

 

-공연단체는 스타를 발굴해내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역 오페라단이 안고 있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해마다 작품 올리는 일에만 몰두해오다보니까 주역급을 끌어들이는 일이 우선이었고 스타를 만들어내는 성과는 미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인을 발굴해내는데는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류를 못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김남두씨도 호남오페라단의 무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지역 출신 성악가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 호남오페라단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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