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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호 시인의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88일간의 태평양 어로일기 설명 서사만으로 강한 울림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이 있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선비들의 주문이다. 좀 우회해서 의역하면,사람은 마땅히 만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 얼마나 섬뜩한 주문인가. 그리고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석학들 몇이 5000권쯤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은 기억은 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현자로 널리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책이 매우 귀한 시대인데도 면앙정 송순 선생 같은 분은 그의 서가에 만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는 전설같은 사실도 전해진다.

 

가령 '아는 것이 힘이다' 할 때, 아는 일은 독서에서 비롯될 것이요,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말인즉,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할 때, 그 진리도 역시 독서에서 눈떠지리라.

 

무한량의 독서로 말미암아 우주 만유존재와 그 진리와 참 자아는 상호 관통하고 통섭(通涉)됨을 저리 이름이니 진실로 독서의 효용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읽고 내일도 읽자.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모든 시간에 걸쳐 이 거룩한 행위에 전념하자. 일의 양도 줄이고 독서의 은택을 누리자. 많이 읽은 자는 만인을 지배케 된다.

 

프랑시스 베이컨 말대로 독서로서 만 가지 사상(事象)을 재량(裁量)함에 가장 현명하고 가장 슬기로울 터이다.

 

시의 적절한, 독서의 계절에 이르러, 필자가 의도하는 바는, 이러저러한 아무것이나 하는 독서가 아니라 기왕이면 인문학적 소양을 배가하게 하는 독서를 권하고 싶은 것이다. 자연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욱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독서는 바로 넓은 의미의 인간학을 깨우치게 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학하는 사람이므로 권하는 책이 의당 문학책일 수밖에 없다. 고금동서의 수많은 고전이 염두에 떠오르지만, 〈노인과 바다〉는 가볍게 대하여 읽기가 수월하므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문학성에 깊이가 있으며 철학적 아우라가 넓게 번진다. 요약하면, 한 노인 어부가 홀로 태평양 바다에 나가 88일 동안에 걸쳐 펼치는 어로 작업 일기인 셈이다. 소설이 지니는 문체, 예컨대 묘사, 설명, 대화, 서사 중에서 오직 설명과 서사만으로 문장을 유려하게 이끌어간다. 노인은 단독자로서 광활한 자연 앞에 돌올하다. 인간이 신 앞에 단독자인 점에 의미가 접목된다.

 

평범하게 이어가는 삶의 이야기인데, 그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전범(典範)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실존자인데, 소설 인물을 철저히 여기에 맞춤으로 이야기는 어느덧 그대로 상징화된다.

 

인간이 자연을 궁구하고 천착하고 토파(討破)하여 자신에게 이롭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히려 강력하게 지배당하는 피동태인 점도 부각된다. 큰 고기를 잡아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지만 귀환하면서 상어떼를 만나 다 빼앗기고 앙상한 뼈다귀만 가지고 돌아오는 말하자면 과거의 잔상에 현재가 완전히 함몰되는 꼴이다.

 

일체의 존재를 초월한 진공(眞空)으로의 회귀를 이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양적 허무주의가 골 깊게 사리를 튼다. 치열하게 살되, 그러나 멀리 내다보아 허무나 무상도 미리 상정해 두어야 하며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처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다독이며 참된 삶을 영위하자는 의미도 읽혀지는 것이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있다.

 

"인생은 진실로 허무하다. 인간은 무상한 존재이다. 그러나 머물러 있으라. 자신을 펄펄 나부끼며 치열하게 살아라. 운명의 신이 그대의 생을 거두어 모닥불에 던지기까지는."

이 소설은, 철학을 들여다 보고자 하면 철학이 보이고, 그냥 문예의 글로 머물러 있으려 하면 그렇게 독해된다. 사실 어떤 책이든 읽는 자가 책 속에서 어떤 가치를 캐낼 것인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인 것이다.

 

※소재호 시인은 1984년 '현대 시학'으로 등단. 완산고 교장·전북문인협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석정문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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