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듣는 판소리는 다르다. 판소리만큼 TPO(Time, Place, Occasion)의 영향이 큰 예술도 드물다.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청중이 듣느냐에 따라서, 소리꾼의 소리가 크게 달라진다. 전주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국악수도! 봄에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가을엔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열린다. 이런 전주에서 소리를 할 땐, 소리꾼의 태도가 사뭇 달라진다.
2013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듣는 판소리엔 정감이 있다. 봄날, 전주대사습에서 듣는 소리도 좋다. 하지만 경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르는 소리이기에, 아무래도 긴장하고 경직되는 면이 있다. 반면 소리축제에서 듣는 판소리는 한결 푸근하고 넉넉하다. 이럴 때의 소리는 그대로 소통이다. 소리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 강하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 듣는 판소리는 매우 섬세하다. 소리꾼과 구경꾼이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소리를 하는 경우는, 전국 어디서나 찾아보기 어렵다. 소리꾼의 목젖의 움직임에서 미세한 발림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리다.
따라서 구경꾼들은 더없이 흥미진진한 자리지만, 소리꾼에게는 분명 상당히 부담이 되는 무대다. 소리꾼들이 보다 더 정교하게 공을 들여가면서, 쌓아온 공력을 뽑아내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한옥생활체엄관에서 펼쳐지는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은 전주소리축제의 보석같은 자리다. 대한민국에서 판소리를 하는 젊은이라면, 누구든 이 자리에서 서고 싶어 한다. 젊은 소리꾼들이 미래의 명창으로 성장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해도 좋겠다.
이런 무대에선 정말 소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도 등장하는 '제대로'란 말은 원래 판소리에서 시작됐다. 동편제, 서편제라는 용어가 있듯이, 자신이 하는 판소리의 원래의 법도(法道)대로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요즘 젊은 소리꾼이 스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반갑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가 아직 미흡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더욱 사정이 이럴진대, 그저 제 흥에 겨워서 제 멋대로 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상한다. 전주에선 이런 얼렁뚱땅한 소리가 하면, 분명 귀명창에서 탄로가 난다.
올해 무대에 오르는 다섯 명의 젊은 소리꾼들을 누구인가! 김미진의 '심청가'로 출발한다. 김미진은 청국 배비장과 서편제를 통해서 국립창극단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대기만성형의 소리꾼으로, 그녀의 소리에는 서슬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쿨한 매력이 돋보인다.
박인혜는 '흥보가'를 어찌 이끌어갈까? 박인혜는 여러 무대에서 연극성이 강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녀의 소리를 절창(絶唱)이라 해도 좋으리. 그녀는 핫한 매력이 있어서, 어떤 때는 마치 모노드라마의 여배우처럼 뜨겁다.
대세란 말이 있다. 요즘 판소리계의 대세라 하면, 이소연을 꼽는 사람이 많다. 창극에서 춘향과 심청을 맡으면서, 실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특히 '수궁가'의 토기 역할로 외국 연출가를 매료시킨 그의 수궁가가 기대된다. 그녀는 결코 대중화라는 미명하에, 관객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을 다가오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게 이소연만의 매력이다.
김도현은 이번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의 유일한 남성 소리꾼! 아무래도 남성이 불러야 제 맛이 난다는 '적벽가'를 들려준다. 그가 부른 소리의 저 멀리엔 박봉술 명창이 있다. 동편제의 호방함이 겹겹이 쌓여있다. 박봉술 명창은 비록 생전에 목(성대)는 꺾였어도 성음은 살아서 귀명창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김도현의 소리 가까이에는 김일구 명창과 김영자 명창이 있다. 이런 소리명가에서 태어나 자란 그이다. '모태 소리'란 이런 것을 확인하게 되리라.
판소리 다섯 바탕의 대미는 '춘향가'! 조선화의 소리로 들으면서, 그녀를 춘향의 환생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현재 남원시립국악단에서 활동하는 그녀이기에, 더욱더 그러하리라. 이난초 명창을 사사한 그녀의 소리 속에서,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고루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으리라.
우리 판소리에는 이런 전통이 있다. 정정열의 '춘향가', 박봉술의 '적벽가'! 명창과 소리를 바로 연결하는 전통이다. 이번 소리축제에 만나는 젊은 소리꾼들도 30년쯤 지나면 그리 되지 않을까? 늘 '제(制)대로' 부르겠다는 각오로 임하면서 소리를 한다면, 언젠가 이런 기존의 제(바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제(制)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어디선가 선대(先代) 명창이 이렇게 준엄하게 경고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제대로 하지 않으려면, 아예 하지를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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