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품에서 공부만 하다가 낯설고 물선 곳에서 밥해 먹으며 공부하랴, 빨래하랴 힘도 들었으리라. 더구나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차선에 만족해야 했으니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라면 몰라도 그래도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이거늘, 어찌 보면 더 힘든 일들을 이겨내도록 입시전쟁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을 연단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리라.
언젠가 헬스장 샤워실에서 한 수험생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학생이 내게 "목사님은 행복하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다. "왜 행복하지 않니? "나의 질문에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요…." 라고 대답을 시작한 아이는 "목사님을 뵈면 늘 행복하고 여유가 있게 보여서요"라고 대답했다. 곧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입시문제로 지금 마음이 편치 못하구나, 그래서 목사인 나에게 행복하냐는 물음으로 마음 한 자락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
그럼 믿음으로 사니까 늘 행복하지.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다 맡기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혹 세상에서 힘들고 고달프고 실패했다 해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입시나 다른 세상사가 네 뜻대로 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살면 행복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힘내라 화이팅!
그 아이가 나간 후 나는 새삼스럽게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믿음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고, 생명과 사망으로 갈라놓기도 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인생을 여유롭게 만들기도 하고 쫓기게 살게도 하는 것일까?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단순하게 정의한다. 쉬운 성경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 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라고 해석한다.
비록 눈에는 안 보이시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거늘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
어찌 여유롭게 살 수 없을까?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혼자 지고 끙끙대는 것은 불신이리라.
오늘 지면을 통해 부족하나마 나의 종교 칼럼을 본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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