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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 21. 중국 무이산 (3) 어떻게 지정됐나

기초연구·기반시설 튼실히, 16㎢ 관광특구 개발 박차 / 지방정부 합의·재원 확보·주민 이주문제 합리적 해결

▲ 대나무 뗏목 ‘주파이’를 타고 바라본 무이산의 풍경.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따라 펼쳐진 뗏목 유람길에는 천혜의 비경과 함께 수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중국=추성수기자 chss78@

무이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87년 무이산 일대를 생물권 보존구역으로 지정해 세계복합유산 등재의 초석을 다졌다. 처음부터 세계복합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생물권 보존구역 지정 이후 중국 정부는 무이산 일대에 자연 환경 보호를 위한 예산과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세계복합유산등재추진위원회 구성, 관광 특구 지정, 역사·인문학 배경 연구 조사 등을 통해 마침내 지난 1999년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 과정= 무이산 세계복합유산 등재 추진은 지난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관광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천자룽 무이산시 시장은 취임 첫 업무보고에서 등재 추진을 지시했다.

 

이후 무이산시 관계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세계복합유산에 선정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뿐이기 때문이다. 당시 생물권 보존 구역으로 지정돼 있었지만 유산의 가치 평가, 유산의 보호 관리가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무이산시는 먼저 2년 가까이 전 세계 복합유산 답사를 진행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무이산의 장점을 키우는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에 대한 보강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무이산시와 중국 정부는 무이산 일대를 관광특구로 개발했다. 빼어난 풍경과 풍부한 역사유적에 비해 관광객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 등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이산 관광 특구는 지난 1996년 첫 삽을 뜬 이후 현재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면적은 16㎢에 이른다. 숙박시설만 300여개에 달하고 상업지구에 들어선 상가는 1000여개가 넘는다. 연간 700만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와 함께 기반시설을 구축하는데도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당시 1억7000만 위안(현재 환율 적용 한화 550억원)을 들여 도로 및 공항 시설을 보강했다. 또 무이산 일대에 낙후된 건축물 14만㎡ 철거했고, 무이산에 거주하던 2000여명의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기반시설 보강, 기초 연구 등을 마친 중국 정부는 지난 1998년 6월 국가 건설부, 문화부, 교육부, 외교부 등의 연합서명문서를 국무원으로 제출했다. 당시 주룽지 총리와 원자바오 부총리가 이를 승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등재 신청을 했고 이듬해 실사단의 평가를 거쳐 지난 1999년 12월에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평가단은 “양서류·파충류·새의 천국, 뱀의 왕국, 곤충의 세계 등 세계 생물의 창문이다”고 무이산을 평가했다.

▲ 무이산 곳곳에 웨딩촬영하는 신혼부부가 자주 눈에 띈다. 빼어난 경관과 주자학의 대가 주희의 뜻을 이어 지혜롭게 살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찾는다고 한다. 중국=추성수기자 chss78@

△등재과정서 겪은 어려움= 등재과정에서 가장 걸림돌로 작용한 점은 각 지방정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무이산은 3개의 성과 4개의 10개의 향·진에 걸쳐있어 지방정부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자룽 무이산시 시장은 이들 지역을 수시로 방문, 세계복합유산 등재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 공유를 약속하며 합의를 이끌어냈다.

 

재정적 어려움도 등재 추진에 발목을 잡았다. 관광특구 개발 등에 필요한 550억원의 막대한 비용 마련은 인구 23만명의 지방정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벽이었다. 하지만 무이산시는 고부가가치 관광산업 발전 비전 등을 제시하며 중국 농업은행에서 114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고, 현재 대출받은 금액은 대부분 상환한 상태다.

 

마지막 과제는 이주민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당시 무이산시의 한 지역신문은 “수십년 동안 무이산 일대에서 살아가던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설득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무이산시는 주민들에게 공동이주단지를 만들어 주는 한편 보호구역 내에서 지역 특산품인 대홍포차(大紅袍茶)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민들을 설득했다. 현재 이주한 주민들은 대홍포차를 재배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고, 이에 더해 관광 수입은 덤으로 얻으면서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양잉씨(46)는 “이주할 당시에는 반발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차(茶) 산업을 중심으로 그때보다 소득이 30배 이상 올랐다”면서 “무이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대홍포차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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