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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시인 - 김영춘 시집〈나비의 사상〉

시대 질곡 정확히 꿰뚫어 본 준엄한 시어·깔끔한 형식

김영춘 시인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나비의 사상> (사십편시선, 2013. 9. 23)을 상재했다. 도종환은 첫시집 발문에서 “그의 시는 아무래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되비쳐보게 하는 거울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두 번째 시집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가 최초로 시작되는 지점이 인간사든 자연사든 시인의 시선에 포획되어 형상화된 시적 발화는 동시대인들의 동의가 필요치 않은 당위성을 지녔고 그 귀결점은 단연코 거울을 내장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김영춘의 시 속에서 돋을새김이 되는 배려는, 현실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임을 전제한, 개성의 표출에 주력하다 못해 불화와 불통의 방식으로 괴기스럽기까지 한 이미지를 도색해내는 시들의 발화와 자리를 달리 한다. 김영춘의 시도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 부조리와 순정이 뒤섞인 지점에 뿌리가 닿아 있지만 차가운 교환가치의 현실을 거절하는 지점에서 소통의 자리를 확보한다. 거기엔 전체주의적 또는 관념적 불손함이 없다. 동시대를 앓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물질에서 못 벗어난 우리를 호출해내는 성찰이 있을지언정 ‘텅 빈 기표’에 불과한 휘발성 발언이 없다.

 

갈 데까지 가버린/ 절정의 경계에 서지 않고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또 시를 읽느냐는

 

시도 안 쓰는 친구의 말을 듣다가

 

그렇지 않느냐는/ 술 취한 다그침을 듣다가

 

화들짝/ 나는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절정에 올라/ 기쁨에 몸을 떤다

 

모든 기쁨의 순간보다/ 모든 깨우침의 순간보다 먼저

 

갈 데까지 가버린 숨막힘이

 

늘 두려운 얼굴로/ 내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절정’전문

 

사회역사적 절망, 실존적 절망에 뿌리를 댄 자기한계의 막바지에서 신음소리처럼 새어나오는 환희의 순간을 시인은 ‘절정’으로 읽는다. 갈 데까지 가보지 못하고 “늘 두려운 얼굴로/내 옆에 서 있었던” 숨막힘, 삶의 모순을 정면에서 고민하지 못하고 비껴가기만 했던 부끄러움이 기쁨의 순간보다 깨침의 순간보다 먼저 ‘숨막힘’으로 온다. 이 숨막힘의 순간을 시인은 ‘절정’으로 맞이했을 것이다. “갈 데까지 가버린/ 절정의 경계” 그것은 자기한계의 막바지이자 목숨의 경계를 환기한다.

 

마음과 몸이 따로따로일 수밖에 없는 슬픈 길항을 삶의 정면에 놔보지 않는 한 자기한계의 막바지나 목숨의 경계를 만날 수는 없다. 시를 쓰고 읽는다는 자가 그 길항의 통점에 이르지 못했거나,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거나, 시의 자율성을 포기하고 기득권 세력이 구획화한 질서에 복무하는 시는, 엄밀히 시의 형식을 가장한 ‘행갈이’에 불과하다는 뜻을 이 구절은 강하게 물고 있다.

 

열 살 무렵 십리 길 심부름에서/ 얻어 감춘 숭어 한 마리 있다

 

바닷물이 거품을 물고 수문을 빠져나가는

 

저수지의 한 중심/ 염전 일꾼들의 좁혀오는 그물망을 뚫고

 

허리를 휘어 허공으로 몸 날리던/ 숭어 한 마리

 

아스라한 수직의 높이에서/ 순간의 호흡으로 빛나다가

 

그물망 너머 물결 속으로 사라져갔다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숭어를 보며/ 나는 다리를 후들거렸다

 

여시구렁 어두운 산길이 무서워/ 후들거리던 때와는 달랐다

 

무섬증과는 전혀 다른 후들거림을/ 온 몸에 품게 한 숭어 한 마리

 

내 가슴엔 아직도/ 뙤악볕 아래 물결 속으로 사라지던

 

그 후들거림이 산다-‘숭어 한 마리’ 전문

 

시인의 열 살 때 기억을 떠올린 이 시엔 ‘후들거림’을 뜻하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온다. “여시구렁 어두운 산길이 무서워/ 후들거리던 때와는 달랐다”는 이 후들거림은 어른이 된 시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이 계기는 ‘숭어’를 내장시킨 기억을 무작정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포에 인접된 무섬증이 아닌, 자기한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용솟음치는 순간에 열 살 때 보았던 숭어가 떠올랐을 터이다. “염전 일꾼들의 좁혀오는 그물망을 뚫고/ 허리를 휘어 허공으로 몸 날리던” 숭어, “그물망 너머 물결 속으로” 사라지던 숭어는 자기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현재적 삶의 극점에서 시인 자신과 동일시된 상관물이다. 후들거림에 해당하는 단어를 4번이나 쓴 이유는 이것이다.

 

삶의 어떤 계기가 자기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후들거림으로 시인에게 다가왔는지는 시엔 그 언표조차 없다. 그러나 이 숭어는 물결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독자의 가슴 속에서 퍼덕이게 하고, 문명네트워크란 저인망 그물에 걸려 삶이 옥죄어지는 형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시의 품이 현실의 품보다 넓다는 것을 환기하는 셈이다. 기억 속에서 현재와 미래가 투영되고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계기가 기억을 현재의 시각에서 새롭게 직조하게 하고,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세계를 마련하도록 독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후들거림’으로 그치지 않고 현재 삶을 되짚어보게 하는 시의 울림이다. 동시대인에 대한 김영춘 시의 관심과 베풂과 소통과 배려가 드러나는 대목인 것이다.

 

새 시집에 수록된 편편엔 시를 위한 언어수사가 없고 시어 선택의 준엄함과 형식의 깔끔함은 시가 도태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우려를 말끔하게 가시게 한다. 시대의 질곡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산을 오르다」「너무나 인간적인」「옛집에 눕다」「마을에서 살고 싶었다」등의 시가 그것이다. 펑펑펑 내린 눈으로 길이 막힌 동네에서 밥 한 술 떠 넣는 사이, 타자화 된 줄 알았던 동네사람들이 길을 내어 어린것들을 길바닥에 내닫게 하는 것을 보고, “터무니없는 순간에 다시 사람을 믿는다”(「길」)는 곡진함과 진정성이 한데 묻어나는 자리에 그의 시가 다시 빛나기를 희망한다. 한때 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래파’가 ‘텅 빈 기표’였을지언정 그 안팎의 지금 시들이 1930년대의 이상李箱과 그 이후 황지우 박남철 김영승을 못 벗어났을지언정 부박한 현실 논리에 훼손당하고 싶지 않은 언어의 영토도 새삼 짚어보면서, 그의 시는 자신과 불화하는 세계에 ‘행동’할 것이다.

※이병초 시인은 1998년 계간 〈시안〉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현재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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