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 출간
‘내게 소설은 무엇인가, 나는 왜 이 소설을 읽고 기억하고 있는가’
전국의 대학교수와 문인 50인이 이에 답을 했다.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소라주).
장성수 전북대 국문과 교수(최명희문학관장) 주도로 전국의 대학교수와 소설가·시인 50명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소설을 선정해 소개한 독서 에세이다. 50인은 전북 연고의 교수와 문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고대소설인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부터 한국의 근현대문학에 우뚝 선 소설, 세계문학사에 빛나는 외국작품들을 선택한 이들 50인 필자들의 소설읽기에서 해당 소설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해당 소설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필자의 글을 통해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매력이다.
△민족과 분단 이 시대 최대 화두
50인이 선택한 소설 중 분단문학을 배경으로 한 작품, 장편소설 분야가 상대적으로 많다. 한국출판 사상 1000만부 돌파라는 기록을 세운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두 명의 필자가 선택하기도 했다. 소설가 문순태는 이 작품을 분단극복의 새로운 방향성과 통일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했으며, 윤석민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문학이 내 삶에서 무엇인지, 뚜 무엇이어야 하는지’ 삶의 좌표를 설정해준 작품으로 주목했다.
고교 문학교과서와 해외에 가장 많이 소개된 최인훈의 〈광장〉도 두 명의 필자가 서로 각기 다른 방향에서 주목했다. 김흥수 국민대 국문과 교수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이념과 분단현실의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이 지금도 유효하며,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현재와 미래를 짚고 가늠해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했다. 송하춘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학시절 만난 이 작품이 기억 속에 늘 젊은 소설로 살아있다고 했다.
임명진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북한 홍석중의 〈황진이〉를 남북한의 독자가 함께 공감하는 작품으로 꼽으며, 통일문학과 통합문학사 수립에 가장 확실한 길이 남북 독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런 작품이라고 평했다.
장미영 전주대 교수는 윤정은의 〈오래된 약속〉이 “표면적으로 탈북자 이야기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 다른 정반대의 두 체제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분단민족의 서글픔을 담았다”고 보았다.
△토지, 태백산맥, 그리고 혼불
장일구 전남대 국문과 교수는 최명희의 〈혼불〉이 소설을 넘어 관혼상제를 비롯한 한국인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을 깊이 있게 정리한 가히 백과사전이라고 일컬으며, 혼불읽기에 빠져드는 것은 문학 고유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일이라고 했다.
소설가 김저운씨는 박경리의 〈토지〉를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았다. 〈혼불〉이 전북의 말을 수놓듯이 새겼다면, 〈태백산맥〉은 전남지역의 말을 꼬막처럼 알차게 살찌웠고, 〈토지〉는 경상도지역의 말을 강물처럼 풀어놓았다고 적었다. 그는 “글을 읽다가 대화 흉내 내어 보라. 자신이 소설 속 인물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인물의 삶과 정서를 체득해 보는 것도 글 읽기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함한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식민지 근대기와 전쟁과 분단시대를 겪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 소설이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이 겪은 근대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어떤 사회문화적 연구 못지않게 시사점을 던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소설에 대한 새로운 평가도 나왔다. 우한용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김유정의 〈만무방〉을 추천하면서 소설읽기의 자세를 전제로 했다. “작품을 읽는 것은 작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연구자나 비평가에게는 물론 일반 독자의 독서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창조적인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독서 결과를 전복해야 한다. 통념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동백꽃〉이 김유정의 대표작으로 부각됐지만, 그는 여기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식민지 조선 농민의 현실적 삶의 모순 구조를 〈만무방〉 만큼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나를 찾게 한 소설
한창훈 전북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 제주 민중의 수난과 저항을 치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 한 작품. 변방의 한 외침에 불과했던 역사적 사건을 문학의 힘으로 호출해낸 작가의 힘에 주목. 소설 자체도 읽는 재미를 충분히 주고 있으나 일기형태의 사료도 존재하고, 영화도 만들어 있어 다양한 방식의 비교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권했다.
또 소설과 연관된 필자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장성수 교수는 황순원의 〈별〉을 읽으며 먼저 떠나보낸 누이를 떠올렸으며, 양병호 국문과 교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방황하던 시절 김성동의 〈만다라〉를 통해 성찰의 기회를 가졌단다. 김춘섭 전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김승옥과의 의기투합했던 시절을 떠올렸으며, 송준호 우석대 교수는 박범신의 〈덫〉에서 ‘박범신 선생님’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소설가 정도상은 장수 출신 박상륭의 〈죽음의 연구〉로 자신의 죽음 관련 소설의 전범으로 삼았다. 소설가 김병용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시인 문신은 이병천의 〈저기 저 까마귀떼〉를, 극작가 최기우는 서권의 〈시골무사 이성계〉를 주목했다.
장성수 교수는 “우리가 소설에 대해 생각해온 것,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모아 보는 것으로 우리는 21세기 초반 우리 당대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함께 증언하는 셈이며, 미지의 후학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는 지침을 줄 수도 있을 것라는 생각으로 책 안에 모이게 됐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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