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암사동 서원마을을 답사했다. 서울 한복판, 시멘트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시에서 만난 전원마을 이야기는 흥미롭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과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인 작은 동네 서원마을은 서울시가 2008년 시작한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형 지구단위계획 시범사업’의 두 번째 결실이다. ‘살마지’로 통칭되는 이 사업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단독주택지와 저층주거지 보전을 위한 정책이었다.
64가구 3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서원마을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2009년 4월부터 시작돼 2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도로를 깔끔하게 정비하고 주차장을 집안으로 들여놓았으며 시멘트 담장을 없애는 대신 낮은 투시형 담장으로 바꾸었다. 담장을 허문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묵은 살림과 낡은 시설물이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주민들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이웃관계가 친밀해진 자리에 공동체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며, 마을회관과 어린이놀이터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하나가 됐다.
그러나 돌아보면 서원마을의 오늘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고층아파트를 짓는 재개발 대신 기존주택의 구조 변경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선택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공청회와 토론회는 언제나 대립된 의견으로 치열했으며 갈등이 깊어져 분열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해결의 답이 있었다. 공무원, 전문가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나가면서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문제와 보물을 발견하고 잠재력과 미래를 찾아내는 경험을 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는 마을의 진정한 모습을 얻게 된 것이었다.
이제 서원마을 주민들은 매월 보름이면 함께 모여 달빛명상을 하고 동시와 동화를 읽는다.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토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 어른들이 앞장서 수제된장과 고추장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도시계획가 정 석교수의 말처럼 내 집과 우리 마을을 ‘비싸게 팔고 떠날 곳’이 아닌 ‘오래 살아갈 곳’으로 생각하고 실천한 서원마을 주민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빛나 보인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