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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예술가 국악 신동 유태평양 "해외서 판소리 실험무대 계획"

전북대서 한국음악 전공 도전하는 국악인 지향 / 10월 인생의 4번째 완창 강산제 심청가 연습중

 

“국악뿐 아니라 다른 음악을 섭렵해 그것을 판소리로 표현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국악도 음악으로 소통하는 언어 가운데 하나인 만큼 새로운 요소를 접목해 좀더 많은 사람이 듣도록 만들겠습니다.”

 

‘국악 신동’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유태평양 씨(22)는 앞으로 펼칠 게 많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모습에서 과거의 유명세보다는 미래의 소리가 기대되는 젊은 국악인이었다.

 

“도전하는 국악인을 지향합니다. 판소리가 그 시대를 풍자하며 민중의 호응을 얻은 것처럼 현재 대중이 공감하는 판소리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에서 즐기게 하고 싶습니다. 전통 판소리에 안주하지 않고 창작과 접목으로 새로운 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는 지난 2010년 제28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부문 장원, 2012년 제28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일반부 금상을 받으며 차근차근 실력을 다지고 있었다.

 

개강과 함께 공연 연습에 한창인 그를 지난 10일 재학 중인 전북대 앞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노랑 머리에 귀고리, 반지를 찬 모습에서 영락없는 요즘 대학생이었다.

 

그는 대중이 기억하는 6살의 흥보가 완창을 ‘끼’라고 단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참 신기합니다. 어릴 때는 항상 국악에 젖어 살아서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술가가 타고나야 하는 부모님과 스승, 재능의 3가지 복 가운데 2개를 가졌고 재능은 제가 원하는 예술을 하는 10년쯤 뒤에 찾을 거 같습니다.”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신동이라는 말은 부담이었다. 이를 극복하고 국악인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그는 부모와 스승을 꼽았다.

 

“어렸을 때 유명세를 타 소리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포부를 크게 가져 세계음악 안에서 국악을 하도록 이상을 심어주고 뒷바라지를 해주셨습니다. 만약에 저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셨다면 지금같은 생명력은 없었을 겁니다.”

 

그가 중학교 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였던 아버지 유준열 씨는 당뇨가 있는 상태에서 합병증으로 쓰러졌지만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소식도 아버지가 아닌 스승인 조통달 명창으로부터 들었다.

 

유태평양 씨는 “당시 아버지가 유학을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며 만 하루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남아공에 와서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한국으로 가셨다”며 “부모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유태평양이 가능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스승도 마찬가지다. 유학 시절 조통달 명창은 ‘전화 수업’으로 제자와 소리공부를 이어갔다.

 

유태평양 씨는 정읍에서 태어나 3살 때 데뷔했다. 그가 판소리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유 씨의 아버지는 법학도였다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조통달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고, 유 씨는 모태 국악인에서 자연스럽게 조 명창의 제자가 됐다. 6살 때 흥보가, 10살 때 수궁가를 완창했다.

 

이후 2001년 한국관광공사의 홍보대사를 하며 72개국에서 순회 공연을 했다. 그 다음 행보는 예상 밖이었다.

 

2004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아공으로 유학을 떠났다. 인도 공연 중 길거리에서 전통 타악기 연주를 보고 “배워 보고 싶다”는 말을 들은 그의 아버지가 타악의 본고장이자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전격 유학을 감행했다.

 

그는 현지에서 관현악단, 락밴드, 재즈밴드 활동을 하며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그전에는 세상에 국악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유학시절 음악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었고, 때마침 변성기를 맞아 목을 많이 쓰지 않아 소리를 지속하는데 약이 됐습니다.”

 

그는 국립전통예술고에서 타악을 전공한 뒤 전북대 한국음악과에 입학했다. 학교에서도 역시 유명인이다.

 

그는 “이름도 특이해 결석도 못하고 가끔 전공 외 수업시간에 소리 한 자락을 하기도 한다”며 “판소리를 하면 다른 학생들이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점점 국악에 대한 인식과 호응이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는 민요 전공이 아닌데도 요즘에는 송소희가 부른 ‘아니라오’를 시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국악 신동에서 대학생이 되기까지는 많은 상처도 뒤따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소문을 달고 다녀 남아공에서 마약하다 퇴학당해 입국했다거나 목이 꺾여 타악으로 고교를 입학했다 등의 말을 들었다”며 “예전에는 매우 속상했지만 지금은 진정한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생격하며, 극복하는 법을 찾은 거 같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오는 10월을 목표로 인생의 4번째 완창을 준비하고 있다. 강산제 심청가를 연습하는 그는 “담백하고 남성적인 소리가 돋보이는 4시간30분 길이의 공연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에 해외 콘서트도 구상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야니’를 롤 모델로 한 그는 “그리스 출신인데도 공연하는 나라의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다시 만드는 점을 본받고 싶다”며 “해외에서 판소리를 새롭게 바꿔 실험적인 무대를 꾸미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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