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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순간에

▲ 신정호 전주 동신교회 담임목사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작가인 볼테르(1694~1778)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글을 많이 썼고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0년 안에 성경도 사라진다.” 연설을 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진 프랑스 시민들은 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

 

그렇지만 그도 나이의 벽을 뚫지 못했습니다. 점점 노인이 되어 갔고 결국 병들어 죽음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하기를 “선생님,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그 때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이제 6시간도 연장 시킬 수 없습니다.”

 

원기 왕성할 때 확신에 찼던 무신론은 의사의 선고에 의해 흔들려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하고 죽었습니다.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복’이라는 양들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풀을 뜯어 먹으면서 평화롭게 행렬을 이루지만 앞쪽에 양들이 풀을 뜯어 먹어버리면 뒤따르는 양들이 풀을 차지하기 위하여 앞 다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양들의 대열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뒤쪽의 양들이 속력을 내어 앞으로 달려오므로 앞쪽은 선두를 지키기 위해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모든 양떼가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리다가 달려가는 힘에 의해 낭떠러지에 떨어져 버린답니다.

 

스프링복이라는 양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대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삶이 아니었던가. 모두가 과속으로 달려만 가고 있습니다. 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음미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양보가 없습니다. 서로를 바라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생수를 옆에다 놓고도 모두가 목말라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아귀다툼으로 달려가지만 결국은 모두가 낭떠러지로 굴러야하는 인생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그런데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모습이 내 자신이 아닐까요? 오늘은 전 속력을 다해 달리던 시간 잠깐 멈춤으로 내 열손가락으로 움켜잡았던 것 잠시나마 내려놓고 펼쳐진 열손가락으로 이웃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신앙이란 인색함을 깨는 작업입니다. 재물은 쌓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드리고 나누고 베풀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나누는 것이 모으는 것이고, 그렇게 나눈 재물만이 천국과 영원까지 메아리칩니다. 이제 움켜쥔 손을 펴십시오. 그러면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움켜쥔 손을 펼 때, 마음도 펴지고, 가슴도 펴지고, 얼굴도 펴진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계산은 행복을 뺏습니다. 더 나아가 계산은 결정적인 때에 너무 무력합니다. 큰 병에 걸리면 그 때 계산적인 삶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습니다. 삶에서 유형적인 것보다 무형적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유형적인 것은 덤입니다. 덤은 없어져도 좋지만 믿음은 끝까지 남아야 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남는 것도 믿음밖에 없습니다. 죽어서 천국까지 유효한 것도 믿음으로 심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과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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