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인 무대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문영이네 채소, 핫 꽁치, 불끈건강원, 떡집, 과자백화점, 양평 순대국 등의 상점과 노점이 늘어서 있는 ‘달맞이 시장’에서는 상인의 분주한 장사 준비가 이어졌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 꾸며진 무대는 그야말로 시장통이었다. 전주시립극단은 100회 정기공연으로 지난 29일 오후 3, 7시와 30일 오후 3시에 ‘피래미들’을 공연했다. 김태수 작, 류경호 연출.
피래미는 피라미의 방언이다. 작은 몸집에 떼로 몰려다니지만 단결력을 지닌 어종이다. 시장 상인을 한 마디로 표현한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사)한국연극배우협회에서 초연된 뒤 전주에서 다시 올려졌다. 무허가 전통시장 상인이 내쫓기지 않으려는 고군분투기다.
전체적으로 입에 달라붙는 대사와 개성있는 인물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등장인물이 각기 다른 사투리를 사용하고 비유와 대구 등의 대사로 웃음을 유발했다. 늘 티격태격하는 떡집의 ‘김덕구’는 배달을 늦게 다녀오는 부인에게 “처녀가 할 짓 다 하고 애까지 낳을 시간”이라며 타박했고, 시청의 양 계장은 “번영회장은 잘하면 명예, 못하면 멍에요”라며 “무겁게 수표 말고 가볍게 현금으로” 상인에게 돈을 요구했다. 자릿세를 뜯는 깡패는 “내가 웬만하면 아시아에서는 피 안 흘리라고 하는디”라며 상인을 위협했다.
대사 외에도 생선을 다듬는 칼로 맥주의 병뚜껑을 따는 ‘신공’도 보여줬다. 이와 함께 극 중간중간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노점의 노래로 흥을 돋우기도 했다. 구사대가 철거 명령을 거부하는 상인들을 제압하는 장면은 자체 느린 장면으로 연출해 희비극의 성격을 더했다.
특히 번영회장 선거로 현정치를 풍자했다. 유권자에게 술을 사는 향응 제공이나 두 후보가 장기를 두며 서로 사퇴를 종용하는 ‘빅딜 무산’이 이어졌다. 1번 후보로 나선 과자백화점의 ‘박배기’는 ‘준비된 후보’를 내세웠고, 2번 후보였던 생선가게의 ‘박판배’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학력 논란에 당당하게 맞섰다. 선거 뒤 새로운 노점인 ‘춤추는 도너츠’가 상인으로 합류해 시장의 분위기를 올리지만 낙선자는 번영회장을 향해 “감투 쓰자마자 자신의 측극부터 심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의 과거사와 고단하지만 일상적 삶을 보여주는데 반절 이상을 할애했다. 전체 2시간20분의 공연시간 가운데 1시간20분 가량이 지났을 때야 철거 명령을 받는 위기가 시작됐다. 당초 구상보다 극이 길어졌다는 연출자의 설명처럼 발단·전개의 과정 상대적으로 늘어졌고 위기는 한 상인의 분신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해결됐다.
관람 연령을 제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인 웃음 코드가 극의 초반을 채우기도 했다. 떡집 부부를 향해 “낮에도 떡을 치고 밤에도”라거나 젓갈을 팔면서 “처녀 젓만 빼고 다 있다”는 등의 대사가 반복됐다.
마지막 위령(慰靈)을 위한 푸닥거리에서는 과도한 스모그(연기)로 약 20분간 공연장 내에 연기가 가시지 않아 일부 관객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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