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구조작업을 벌인 해경들에 따르면 최초 신고 뒤 해경이 도착할 때까지 선장과 승무원들은 조타실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조타실 바로 옆에는 구명벌 16개가 있었지만, 선장을 비롯해 누구도 구명벌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이 순간 조타실 바로 앞 객실 안에는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흔들고 강화유리를 두드리며 애타게 구조요청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고 현장에 최초로 목포해경 경비정 123함(110t)이 도착하자 서둘러 올라타기 바빴다.
이때가 최초 사고 신고 후 약 40분이 지난 오전 9시37분. 선원들이 처음 탈선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이다.
선원들은 조타실에 모여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바로 구조 가능하냐"는 교신을 반복하고 있었다.
당시 일부 선원의 손에는 조타실로 선원들을 모으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무전기가 들려 있었다.
선원들이 서둘러 경비정에 올라타는 동안 목포해경 소속 이형래(37) 경사는 이 미 60도 이상 기울어진 세월호 갑판에 올랐다.
그는 서 있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갑판 돌출부에 의지해 기어올라 구명벌 두 개를 바다로 떨어뜨렸다.
그 뒤 조타실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경비함에 올랐다.
사고 초기 조타실에 모인 선원들이 서둘렀다면 충분히 구명벌 16개 모두를 떨어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경비정이 다른 승객들을 찾아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조타실 바로 앞 선수(船首) 쪽 객실 안에 6∼7명의 승객이 구명조끼를 벗어 흔들며 구조요청을 하고 있었다.
조타실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확인 가능한 객실이었다.
경비함은 다시 한번 세월호에 접근해 강화유리를 구조도구로 깨고 이들을 구했다.
그 뒤 경비함은 80명을 더 구조했다.
선원들이 조금이라도 구조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더라면 신고 후 40여분간더 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사는 "구명벌을 터뜨려야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서 구명벌을 떨어뜨렸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한 명도 구명벌에 오를 수 없어 안타깝다"며 울먹였다.
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선원들 대부분이 지금 생각하면 구호조처를 해야 했었다"며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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