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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뱅이 벼슬

"주민 머슴 될 것" 표 구걸 정치인·정치꾼 분별해야

▲ 윤철 전 진안부군수·행촌수필문학회
며칠 전, 후배가 다녀갔다. 올곧은 처신과 술수를 모르는 진솔한 언행으로 어디서나 진국이라는 평판을 듣던 사람이다. 그가 지난 연말에 갑자기 6.4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지난 몇 달간 선거판을 누비면서 느낀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울분을 토했다. 여러 명의 예비후보 중 제일 낫다는 지역여론에도 불구하고, 조직이나 자금 등의 현실적 한계가 말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단다. 진정성이 왜곡되고 정치꾼이 좌지우지하는 선거판에 대한 환멸이 너무 커서 예비후보를 사퇴하겠다고 했다.

 

이제 6.4지방선거의 본선이 시작되었다. 정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사람들이 후보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것이다. 우선은 모든 후보가 정정당당하고 씩씩하게 당선을 향해 달려가는 멋진 모습을 기대해 본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며, 한바탕의 잔치판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매번 선거 때마다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혼자 속병을 앓는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선거철만 되면 왜 그렇게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주민의 머슴이 되어 지역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소시민적인 나의 계산으로는 아무리 봐도 밑지는 장사인데, 오히려 큰 비용을 써가면서 그 자리를 맡으려고 하는지도 의문이다. 오직 봉사의 일념이라니 그 뜻이 정말 가상하여 거룩하기까지 하지만 또 의문이 든다. 주민과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의를 가진 사람이 지난 4년간은 어디서 무슨 봉사를 하며 지냈을까? 꼭 그 자리를 맡아야만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정치는 생물이라 의외의 변수가 많다지만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은 싸움에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들이 가리지 않고 보내는 문자에 휴대전화기가 쉴 틈이 없다. 목이 좋은 대로변의 건물은 대형 현수막이 외벽과 창을 모두 막아버려 답답하다고 아우성이다. 모임에 나갔다가 어느 선배가 A 후보의 지지를 당부하는 귓속말과 함께 명함을 몇 장 주었다. 그는 후보자와 뗄 수 없는 어떤 인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적 신념이 같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당선되고 난 다음에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제 밥 먹고 제돈 들여가며 선거운동을 하기가 쉽지는 않으리라.

 

선거에서 한 표 한 표, 지지표를 모으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후보자나 선거운동원들은 유권자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손이 아프도록 악수를 하고, 억지웃음을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어느 때는 비굴하게 보일 때도 있다. 감동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표를 구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얻은 선출직 감투는 비렁뱅이 벼슬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은 봉사와 자기희생의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다. 진정한 정치인은 말이 바르고 논리가 정연하다(正言順理).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巧言令色)로 유권자의 표를 구걸하는 정치꾼과는 구별된다. 나는 선거를 통해 머슴도 아니고, 봉사자도 아닌 제대로 된 정치인이 뽑히기를 원한다. 이렇게 뽑힌 사람은 사지도, 빼앗지도, 구걸하지도 않은 깨끗한 표를 모아 우리가 맡긴 지도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선출직은 표를 구걸해서 얻는 비렁뱅이 벼슬이 아님을 후보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6월 4일을 정치인과 정치꾼을 분별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깨끗하고 꿋꿋한 마음으로 빠짐없이 투표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도 정책이나 비전을 꼼꼼히 따져보아야겠다. 문화, 복지 면에서 삶의 질을 높여줄 청렴하고 정의로운 지도자에게 한 표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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