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생 동갑내기 부부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공부를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다며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고향으로 가자고 말한다. 30년만의 귀향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향에서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 후배들을 위한 공간을 벌였다.
영화평론가 신귀백 씨(56)와 부인 이동순 씨(56)의 컴백 홈. 다시 온 고향에서 뿌리내리며 문화로 이웃과 소통하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늦은 저녁 ‘카페 키노’를 찾았다. 아직도 얼굴에는 개구쟁이 호기심이 가득한 남편 신귀백 씨. 온아하고 우아한 자태를 간직한 아내 이동순 씨. 정읍과 전주에서 활동하던 이들 부부를 익산에서 만나기가 조금은 낯설었다.
신 씨는 도내에서 영화평론가로 꽤나 유명하다. 그는 영화 〈미안해 전해줘〉의 감독으로 현재 경상대,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전북비평포럼회장, 전북독립영화제 조직위원, 무주산골영화제 심사위원 등을 지냈고, 저서로는 〈영화사용법〉이 있다. 이 씨는 정읍 배영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지난해 부부는 은퇴 후 익산에 터를 잡았다. 익산시 모현동, 새 주소로는 고현로. 이곳은 남편이 어린 시절 어머니, 형제들과 생활했던 고향집이다.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집을 손봤지만 거의 리빌딩(재건축) 수준이었다. 330㎡가 넘는 공간에 아담하고 예쁜 집과 문화 공간 카페를 지었다. 앞마당과 뒷마당에 한 그루씩 잘생긴 백일홍을 심어 지나가는 이웃에게 눈인사도 건넸다.
“처음에 은퇴하고 집을 짓고 카페를 짓는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다들 부러워했어요. 그러나 하루에 2시간씩 풀을 뽑고 정리해줘야 아름다움이 유지되죠. 만만하게 덤빌 일이 아니고 정말 중노동이에요.”
이 부부의 기본 터전은 카페 키노(KINO:유럽의 영화관. 독일어로는 영화관을 ‘das kino’라고 함)다. 영화를 사랑하는 부부의 소망처럼 익산지역의 자유로운 문화공간이자 쉼터로 떠오르고 있다. 키노는 여느 카페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내부 곳곳은 카메라, 영화 포스터, 책이 놓여 있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싶은 부부의 바람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남편의 소망은 익산지역의 영화 만들기, 익산 출신 영화인과 익산에서 찍었던 영화의 자료 구축이다. 아내의 바람은 동화책 함께 읽기, 대학생에게 자기 소개서 쓰는 법 전수, 아이들 글쓰기 지도 등이다.
30여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부부는 바쁘다. 새로운 인연 만들기와 영화와 인문학 나누기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신 씨는 현재 ‘익산영화인문모임’의 회장을 맡아 정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영화 토론이 주를 이루는 모임은 지금까지 여섯 번 이뤄졌다. 많이 모이는 날은 25여명, 적게 모이는 날은 10여명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동안 같은 취미와 공감대를 나눌 공간과 사람들에 목말랐던 지역의 인재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교사, 작가, 교수, 주부, 학원 강사 등 다양한 회원들로 모임이 구성됐다.
영화에서 이제는 인문학, 철학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모임에서 진행한 행사로는 지난 5월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진행한 ‘독일 영화 강의’, 지난 6월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 출신인 김정식 씨를 초청해 작은 콘서트를 진행했다. 특히 김정식 콘서트에는 주최 측 추산 200여명, 경찰 추산 70여명의 관객이 카페를 가득 메웠다고 주인장은 은근히 자랑한다. 이번 달에는 안도현 시인과 함께 하는 북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익산이라는 지역적 열세를 벗고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모임을 지향한다. 지역의 문화 예술인이 전국의 유명 감독, 배우와 밤새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철학자와 논쟁을 벌이는 그런 날을 꿈꾸며 한발 한발 준비한다는 포부다.
신 씨의 카페와 집은 그의 염원대로 젊은 후배 예술인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고 있다. 오전 2~3시까지 예술인들이 모여서 떠들고, 자고, 놀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익산은 예술인들의 쉼터가 적어요. 특히 젊은 예술인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죠. 제 표현대로 ‘찌대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이것이 저희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죠.”
이 부부는 후배들이 열정과 끼를 맘껏 발산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리고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지역의 자유로운 문화공간지기를 자청하고 나선 이 부부의 인생 2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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