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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맞서 개선할 것인가?

 

■ 제시문

 

〈제시문 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신분 질서 등과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 ‘개인’, ‘자유’ 등의 관념을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새롭게 얻게 된 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무엇에로의 자유’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근대 이전까지는 자신의 신분에 맞는 삶을 영위하면서 나름대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던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작용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조차도 적대적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유는 얻었지만 그로 인한 불안감과 고독감은 더욱 증대된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들은 이러한 불안과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중 하나가 복종을 전제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양태이다. 이는 개인적 자아의 독립을 포기하고 자기 이외의 어떤 존재에 종속되고자 하는 것으로, 사라진 제1차적인 속박 대신에 새로운 제2차적 속박을 추구하는 양상을 띤다.

 

도피의 또 다른 심리 과정은 외부 세계에 의해서 그에게 부여된 인격을 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스스로 중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된다. 나와 외부 세계 간의 모순은 사라지고 그와 함께 고독과 무력감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개인적 자아를 포기해버린 자동인형이 되어 주위의 다른 자동인형과 동일하게 된 인간은 더는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자아의 상실이라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는 부단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불안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의 속성상 인간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속박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가? 개인이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 존재하면서도 외부 세계와 합치되는 적극적인 자유의 상태는 없는가?

 

‘자발성’은 이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된다.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외부 세계에 새롭게 결부시키기 때문에, 자아의 완전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극적인 자유는 개인을 고독한 존재로 만들며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자아를 약화시켜 끊임없는 위협을 느끼게 한다. 자발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 자유에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개인적 자아보다 더 높은 힘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그의 생활의 중심이자 목적이라는 원리와 인간의 개성의 성장과 실현은 그 어떤 목표보다 우선한다는 원리가 그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측면에 더하여 인간이 사회를 지배하고 사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갖추어질 때 근대 이후 인간을 괴롭히던 고독감과 무력감은 극복될 수 있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시문 나〉

 

천하의 강산은 크고 고금의 세월은 유구하구나. 인간사의 가고 옴은 하나도 같지 않고 생물은 형형색색 만 가지로 같지가 않다. 산은 본래 하나이나 만 갈래로 흩어져 서로 다른 산이 생, 물은 만 줄기가 끝내 하나로 모인다지만 일만 굽이가 다르다. 하늘로 날고 강물에 잠긴 동식물의 기이한 형상도 그 같고 다름이 조화의 자취가 아닌 것이 없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음양과 오행의 정기를 받아 만물보다 사랑스럽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다름, 능력의 높고 낮음, 식견의 크고 작음, 오래 사는 자와 요절하는 자, 가난한 자와 부귀한 자로 나뉘어 서로 같지가 않다. 때를 얻어 임금을 섬 백성들에게 은택을 끼쳐 이름이 역사에 남는 사람도 있고, 시대를 잘못 만나 귀한 구슬을 지닌 채로 초목과 함께 썩은 사람도 있다.

 

이 중에 여자는 발이 규방(閨房)의 문을 나가지 못하고 오직 술과 음식 만드는 일만을 의논하는 것이 옳다고 했으나, 옛날의 성현이었던 문왕과 무와, 공자와 맹자의 어머니에게는 모두 성스런 덕이 있었고, 또 성현을 낳아 이름이 만세에 드러났다. 이렇게 빛나는 일을 이룬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찌 여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 없겠는가? 큰일을 이루지 못하면 규중에 깊숙이 묻혀 그 총명함과 식견을 넓힐 수 없고 끝내는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나는 본래 강원도 원주 사람으로 스스로를 금원(錦園)이라 호를 지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나를 어여삐 여겨 글을 가르쳐주시니 몇 년이 되지 않아 경서와 역사서를 약간이나마 알게 되었고 고금의 문장(文章)을 본받고 싶어져서 이따금 흥이 날 때마다 꽃과 달을 읊조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태어날 때 금수(禽獸)가 되지 않고 사람이 된 것이 다행스럽고, 오랑캐 땅에 태어나지 않고 문명(文明)한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남자가 되지 않고 여자가 된 것은 불행하고 부귀한 집에 태어나지 않고 한미한 가문에 태어난 것은 불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미 나를 낳았으니 어찌 홀로 요산요수(樂山樂水)하여 보고 듣는 것을 넓힐 수 없겠는가?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집안 깊숙이 문을 닫아 걸고 사는 것이 옳겠는가?

 

한미한 집에 태어났으니 형편을 좇아 분수껏 살아가는 것이 옳겠는가? 아아! 내 뜻은 결정되었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기수에서 목욕하며 바람을 쐬고 글을 읊었던 증점(曾點)을 본받는다면 성현들께서도 또한 마땅히 장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에 마음을 굳게 먹고 부모님께 여러 번 간청하니 한참 뒤에 내 뜻을 허락해주셨다. 이에 가슴이 툭 트이는 것이 마치 매가 새장에서 나와 곧장 하늘로 날아가는 듯하고 천리마가 재갈에서 풀려나 천 리를 치닫는 듯했다. 그 날로 당장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짐을 꾸려 먼저 충청도의 네 고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김금원(19세기 조선의 여성),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2013 이화여대 모의논술 기출문제 지문

 

■ 논제의 포인트 및 평가기준

■ 논술문을 6단 논법으로 재구성하기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제시문 가)를 통해 인간들이 주어진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원인과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 방안에 대해서 서술하고, 이에 근거하여 제시문 나)에 나타난 ‘나’의 태도에 대해 설명하시오. (1,000자 내외)

 

2. 면접 논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시오. (주변 친구들과 개인과 국가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토론하기 바랍니다.)

 

■ 쟁점 기출문제

 

이화여대 2013 모의 논술

 

아래 인용문을 바탕으로 제시문[가]와 [나]에 나타난 삶의 태도를 설명하시오.

 

■ 쟁점 관련 도서

 

〈자유로부터의 도피〉2012, 에리히 프롬, 휴머니스트

 

〈단속사회〉2014, 엄기호, 창비

 

■ 쟁점 관련 영화

 

‘쇼생크 탈출’1995, 미국, 프랭크 다라본트

 

‘노예 12년’2014, 미국, 스티브 맥퀸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1. 학생 논술문

근대 이후 사람들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그들은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아노미 상태가 되었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과 고독감에 다시 그들의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노예였던 사람이 자유를 얻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이로 인해 우월하게 여겨지는 다른 존재에 종속되려고도 하며,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고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또한 개인은 때로 시대와 현실이 요구하는 가치를 따라야 할 때도 있으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과도한 의도와 책무감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자율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불안감과 공포감을 극복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프롬이 말한 것처럼,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자기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여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을 억압하고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아를 존중하는 사회적 여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금원은 규방의 여성으로서 타고난 총명과 식견을 넓힐 수 없도록 하는 부정적 조건에 대항하여 넓은 바깥 세계로 나아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사회는 여성에게 폐쇄적이고 제한된 자유만을 허락했으며,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했다. 그러나 금원은 주어진 삶에 순응하지 않고 속박과 구속에 맞서 자신의 꿈과 의지를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 이렇게 자발성을 가지고 자신의 발전을 꾀한다는 점에서 금원은 적극적인 자유를 꿈꾸는 인물이며, 개인의 자아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오행수 (임실고 2학년)

 

2. 교사 총평

 

이번 논술문의 주제는 ‘삶의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맞서 개선할 것인가’이다. 삶을 살아가는 여러 방식 중에서 순응과 개선은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인간의 자유 의지와 결부시켜서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이번 논제에서 요구하는 점이다.

 

- 독해력

 

제시문 가)는 에리히 프롬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에서 근대 이후 신분제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 인간들이, 주어진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원인과 그 심리적 과정을 설명한 부분이다. 제시문 나)는 조선 시대 여성인 금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의 글에서는 삶의 부정적 조건에 대항하여 자유로운 여성으로 살기를 바랐던 금원의 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금원이 깨달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짚어내었다.

 

- 논리력

 

이번 논제는 제시문 가)를 근거로 한 설명형 논제이다. 이번 논제의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제시문 가)의 논지를 서술한 후 이를 근거로 제시문 나)에 나타난 ‘나’의 삶의 태도를 서술해야 한다. 금원은 자발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의 관점에 근거하여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금원의 태도를 설명할 때, 가)의 기준에서 벗어난 설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행수 학생의 논지는 이러한 논제의 요구에 매우 잘 부합한다. 다만 금원이 적극적으로 자아의 발전을 꾀한 이유인 ‘역사적으로 뛰어난 여성이 있었다는 것과 규중에 있으면 총명과 식견을 넓힐 기회가 없다는 자각’을 분명하게 적어 주었다면 더욱 논리적으로 완성된 논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표현력

 

제시문의 논지를 요약할 때는 제시문의 표현을 발췌하여 재구성하기 보다는 논의 대상과 주장, 근거를 찾아내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이때 제시문의 핵심어를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한다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학생의 글은 전반적으로 논제의 요구사항에 맞춰 무난하게 서술했다. 다만 적절한 접속어를 사용해서 문장의 흐름을 부드럽게 했다면 더욱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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