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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총괄 건축가' 승효상 씨 "건축은 소유 아니라 사용하는 것…공공성이 곧 건축 윤리"

▲ ‘빈자의 미학’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건축가 승효상씨.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건축사무소‘이로재’에서 만난 승효상씨는“궁극적으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 된다”고 말했다. 안봉주 기자

도시는 복잡하다. 길과 길이 엮이고 건물과 건물이 엮인 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다 조금 한적한 골목길도 더 이상 여유롭지 않다. 빠르고 편리함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온 시대적 산물이니 온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가 빚어낸 풍경일터다. 왜 우리는 끝없이 높이고 채우고 더하려하는 것일까. 그런 도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건축가 승효상씨(63·이로재 대표)를 만났다. ‘빈자의 미학’으로 대중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임명됐다. ‘총괄 건축가’는 우리에게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 도시들을 비롯해 건축문화가 앞선 세계의 여러 도시들은 이미 이런 직제를 두고 도시의 건축을 관리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행된 행정기관의 직제다.

 

그럼에도 ‘공공성’을 건축의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철저하게 지켜온 궤적으로 보면 ‘총괄 건축가’로서 그가 수행해낼 역할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도시 서울의 미래를 주목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승효상씨가 대표로 있는 건축사무소 ‘이로재’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다. 대학로 한 중간쯤에서 빗겨 들어가 좁디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주택들 사이에 녹슨 강판으로 마감한 건물이 보인다. 단순한 외형에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녹슨 강판의 외벽이 인상적인 이곳이 ‘이로재’다.

 

인터뷰는 이 건물 1층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있었다. 외부 손님들은 2층에서 안내를 받아 내려가게 되는 모양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비좁고 경사가 급해 조심스럽고 다소 불편했지만 재미(?)있었다.

 

두 시간 남짓한 인터뷰 말미에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 물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즐거움을 주는 집이 좋은 집입니다. 불편함이 결코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의 일상에서 불편함의 존재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인가. 그럼에도 그는 그 불편함을 즐길 수 있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가 건축의 지표로 삼아온 ‘빈자의 미학’ 역시 그 연상에 있다. “궁극적으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 된다”고 말하는 그는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미학’을 실현하기 위해 늘 성찰하며 건축의 가치를 찾는다. 그 덕분인가. 우리 일상에 들어오는 그의 건축이 왜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게 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선임되셨더군요. 이런 직능을 만든 것이 처음 아닌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입니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정착되어 있는 제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지 않았죠.”

 

-어떤 역할을 합니까.

 

“전반적으로 서울시의 건축에 관한 자문을 하죠. 정책 결정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고요.”

 

-전반적으로 자문 뿐 아니라 정책 결정과 시행에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면 엄청난 권력인데요.(웃음) 권력을 잘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엄청난 권력이죠. 그래서 스트레스도 엄청납니다.”

 

-하시는 일은 어떻습니까.

 

“결과적으로는 적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들어와 보니 도심 재개발 곳곳에 문제가 많아요. 이미 법규로 정해져 있는 내용이지만 도저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용적률이 쟁점인데 그것 때문에 개발업자들과 많이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는 부딪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주민들은 만나서 설득하면 금방 이해하거든요. 개발업자들 이익에서 조금만 양보하면 혜택이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으니 제 의견을 굽힐 수 없게 되죠.”

 

-도시재생은 이제 유행이 된 듯합니다. 재생은 의미 있는 과정이고 가치도 있지만 무조건 낡은 것을 부수지 않는 것만이 옳은 일인지, 자칫 도시마다 도시재생이란 명분을 내세워 획일적인 재생사업이 성행하지는 않을지 의구심도 듭니다.

 

“그런 재생은 옳지 않지요. 재생하려면 중요한 가치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공성에 부합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가치를 따져보면 답이 나옵니다.”

 

-공공적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들의 갈등과 분열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설득해야죠. 서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공공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논쟁이 필요하다면 그 시간이 길어진 다해도 충분한 논쟁을 해야 하고요.”

 

-도시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건축이 중요한데요.

 

“옛날 로마시대나 이집트 시대에는 독재자들이 건축으로 국민들을 조정했어요. 전쟁에서 이기고 오면 건물을 세워주기도 했죠. 특히 히틀러는 건축물로 민심을 조작했던 대표적인 독재자예요. 행정의 결과도 결국은 건축물로 남게 되는데 그만큼 건축은 중요합니다.”

 

-옛날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해 만들어놓은 도시 풍경의 후유증이 그 증거예요. 다행스러운 것은 시민의식이 달라져 이런 도시 풍경이 우리를 더 이상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본질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개발의 과정을 통해 너무 많은 기억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은 개발이 아니라 재생 쪽으로 도시정책을 많이 전환했어요. 랜드마크보다는 네트워킹하는 것으로 전환했고, 일시적으로 한꺼번에 다하는 것 보다는 순차적으로 조금씩 점진적으로 하는 방식이죠. 이것은 선진도시들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전 시대의 마스터플랜 방법이 아니라 침술적 방법이랄 수 있는데, 국소적인 부분을 잘 치유해 만들어놓으면 그것이 자장역할을 해서 주변에 영향을 주게 되거든요.”

 

-전라북도에서도 재생사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주는 한옥마을의 변화, 전라감영 복원, 종합경기장 개발 등 도시 풍경의 축이 새로운 경계를 맞고 있는데요.

 

“전주는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한옥마을은 이미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죠. 그러니 이제 주변에 고층빌딩 같은 것을 만들어 한옥에 관한 풍경을 흐트러뜨리는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 전주야 말로 역사적으로 소중한 흔적들이 있고 전주만의 정서도 잘 지켜왔는데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고층건물 같은 아류로 전주 풍경을 어지럽힐 이유가 없어요. 완전한 도시 전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능성이 많은 도시입니다. 중소도시로서 대표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런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한옥마을은 지나치게 상업화된 공간으로 바뀌면서 그 변화의 속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상업화가 많이 진행되었더군요. 사실 저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었어요. 5-6년 전에 한옥마을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마을 보존하는 일을 주민들이 나서지 않고 관이 하더군요. 그것도 주민들에게 직접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개인에게 돈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은 좋지 못한 방법이거든요. 한옥마을을 제대로 지속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공공영역, 이를테면 길이나 마당, 광장 같은 공간들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공공재를 투자해야 합니다. 개인에게 지원하게 되면 지원금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거든요. 이런 지원금이 잘못 활용되면 지가를 올리는 수단이 되고 땅값이 오르면 거주 보다는 상업 활동이 많아지게 되니까 자연히 상업공간화 되는 것이죠. 이미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이런 교훈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잡기에는 때늦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지금이라도 땅값을 올리지 않게 하는 정책이 필요한데 그것이 쉽지는 않죠. 궁극적으로는 공공에서 한옥마을 안의 건물을 구입해 위탁이나 임대하는 방식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키고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지금 개입을 해야 한옥마을이 유지될 겁니다.”

 

-공공성의 가치와 윤리를 늘 강조하시는데요.

 

“건축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사용권은 건축주가 갖고 있지만 소유권은 사회와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건축물이나 땅을 갖고 갈 수 있습니까. 후대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개인의 욕심을 줄이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

 

-지금 전주는 종합경기장 개발 방식을 두고 도와 시 행정의 두 축이 갈등하고 있습니다.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식이 있겠지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내용을 알고 있는데 건축적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드러난 것으로만 보자면 종합쇼핑몰이 쟁점이던데 현재의 경기장 여건으로 보면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컨벤션센터나 호텔 등 구상중인 시설을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땅의 기억을 유지하는 것인데 그것이 기존의 시설물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방식입니다. 이미 이런 사례는 세계 다른 도시들에서도 얼마든지 있거든요. 경기장을 완전히 철거하고 고층빌딩을 지어야만 쇼핑몰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고요. 애초 MOU를 체결했다는 롯데도 기존에 갖고 있는 쇼핑몰에 관한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좀 더 창의적인 활동을 위한 형식과 콘텐츠를 고민하고 제안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쇼핑몰의 개념이나 성격도 많이 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원래부터 쇼핑몰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죠. 얼마든지 형태는 다를 수 있는데, 경기장이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는 쇼핑몰이면 더 매력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서울이나 대도시에 있는 쇼핑몰을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면 전주의 풍경도 망치게 되고 그 자체적으로도 사업이 될까하는 의심도 됩니다.”

 

-사실 대형쇼핑몰 건립은 전주 같은 중소도시로서는 매우 민감하고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본질이 바로 거기 있는 것 같아요. 지역 상권에 관한 문제죠. 건축적으로는 기존 시설을 보존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지역 상권이 붕괴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 더 절박한 문제가 아닌가요. 상권 붕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낼 때 건축도 공공성의 가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화제를 조금 돌려보겠습니다. 어떻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까.

 

“원래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반대로 바꾸었어요. 건축은 누나의 권유로 하게 되었는데 공부도 그런대로 잘하고 그림도 곧잘 그리니까 그렇게 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알게 된 것은 공부 잘하고 그림 잘 그린다고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건축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었어요.“

 

-대표작으로 꼭 ‘수졸당’을 앞에 내세우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다른 것은 잊어버리고 싶고 또 잊어야 하는데, 수졸당은 잊으면 안 되는 집이예요. 내가 얼마만큼 와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작점을 기억하고 있어야하니까요.”

 

-그동안 남다른 가치와 철학 때문에 건축주와의 갈등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초기에는 안 맞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럴 때는 설득하고, 설득이 안 되면 작업을 포기했습니다. 건축이 자기 개인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죠. 건축이 공공적 가치라는 것을 인정해야 작업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그럴 수 없으니 갈라서게 되죠.”

 

-주택도 마찬가지인가요.

 

“물론이죠. 모든 건축물은 주변에 영향을 줍니다. 모든 건축은 공공적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건축윤리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해요. 지어지는 모든 것이 다 그렇죠.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한테 ‘이집은 당신 개인 집이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웃음) 처음에는 그런 일이 하도 많아 많이 굶었어요. 제가 워낙 많이 굶는 일에 단련이 되어 있어서 잘 견뎠죠. 독립하려는 후배들에게도 10년 정도 먹을 수 있는 돈이 있거나 굶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으면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건축주의 시녀가 되지 않고 좋은 건축을 할 수 있거든요.”

 

-여행을 즐기시는데, 건축과 여행은 어떤 관계인가요.

 

“건축은 땅위에 서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땅을 가봐야 그 건축의 진실을 알 수 있어요. 땅은 또 그 주변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어서 주변을 파악해야 그 땅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서 여행을 합니다.”

 

그의 서재는 도서관의 열람실처럼 책장이 들어서있다. ‘이로재’의 모든 직원들에게 오픈되어 있는 공간이다. 소장된 책만도 만권에 이르지만 그는 늘 책을 부지런히 사고 읽는다.

 

그에게 책은 어떤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훔쳐보는 일이예요. 책 한권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역사를 얻게 되죠. 건축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설계해주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삶을 알게 된다는 것은 건축을 하는데 제일 좋은 무기예요.”

 

두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는 넘쳤다. 말의 성찬이 아닌 정신을 일깨우는 생명력 있는 담론이었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건축을 사유하고 실현해나가는 건축가의 존재는 우리에게 빛과 같은 것이 아닐까.

 

● 승효상씨는 사유하는 건축가…'빈자의 미학' 실천

승효상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평안남도 정주 출신인 그의 부모님은 해방이 되자 남으로 피난을 왔다. 덕분에 그는 유년기를 부산 피난민촌에서 보냈다. 집안 형편이 곤궁하진 않았지만 중학교 시절, 가세가 기울어 육성회비를 못 낼 정도로 어려워졌다. 수업도 제대로 받을 수 없던 상처와 갈등을 책읽기로 치유했다. 만화로 시작한 그의 책읽기는 건축가 승효상을 ‘사유하는 건축가’로 만든 바탕이 됐다. 경남고를 졸업하고 신학대를 가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공부 잘하고 그림도 곧잘 그리는 그에게 건축과 진학을 권한 것은 누나였다. 대학시절은 투쟁의 시기였다. 유신시절, 군사독재 정권에 맞선 젊은 세대들은 항거와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 대열에 함께 했던 그를 선배가 불러들였다. ‘건축공부에만 전념해라’. 갈등이 없진 않았지만 거리와 광장을 떠나 오로지 건축 공부에 몰두했다. 세상과 결별했던 시절이었다.

 

졸업 후에는 스승의 추천으로 당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건축가 김수근의 문하(공간연구소)에 들어갔다.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주어진 길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80년 광주항쟁 직후, 이 나라에 산다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오스트리아 유학을 선택했다. 스스로의 도피였다. 돌아와서는 다시 공간연구소에서 일했지만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수근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공간을 맡으라는 유언을 남겨 꼼짝없이 공간 대표로 일해야 했다. 공간연구소와 함께 부채 30억 원이 그에게 안겨졌다. 3년이 지나 승효상 건축사무소를 열어 독립했다. 그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첫 작품은 ‘수졸당’.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의 집이다. 그는 이 집을 설계해주고 유 교수로부터 ‘이로재(履露齋)’라 새겨진 귀한 옛 현판을 선물 받았다. 그 뜻이 마음을 움직여 건축사무소의 이름을 ‘이로재’로 삼았다. 90년대 초반에는 젊은 건축가들을 규합해 한국건축의 담론을 생산해내는 ‘4·3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승효상의 건축’을 찾고자 했다.

 

‘건축을 왜 하는가’를 일상의 화두로 삼아온 그는 금호동 달동네에서 ‘빈자의 미학’을 발견하고 건축의 지표로 세웠다. 절제와 검박함의 아름다움을 담은 건축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 바탕이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오스트리아 빈 공대에서 공부했다.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했고 2011년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공동감독을 맡아 이끌면서 참신한 형식과 주제로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런던대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유럽과 미국, 중국과 일본 등의 건축프로젝트와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세계적인 건축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임명돼 서울시에서 이뤄지는 모든 건축물에 대한 정책과 실행을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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