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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 씨 '판소리명창 김연수'] 동초제 명창 삶·소리 대중과의 공감대 찾다

전문용어 알기 쉽게 풀이 / '아니리' 확장 등 상세 설명

동초제 판소리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 안내서가 나왔다.

 

최동현 군산대 교수(국어국문학과, 60)가 연극적인 판소리를 시도했던 동초 김연수 명창의 삶과 소리 세계, 그가 길러낸 소리꾼을 정리한 <판소리명창 김연수> (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최 교수는 정확한 사설이 돋보이는 동초제의 특징을 김연수 명창의 생애와 소리 공부의 과정을 통해 밝힌다. 더불어 그가 사설을 바로잡고 희곡처럼 바꾸려했다는 사례도 설명한다.

 

김 명창이 정리한 <창본 춘향가> 에서는 희곡처럼 ‘장’을 만들고 대사와 해설을 구분했다. 아니리의 확장과 사설의 변용 등 극적인 효과를 위해 창작의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로 동초는 소리광대가 아니라 아니리광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사설만큼 음악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것. 최 교수는 음악 중심의 전통 판소리가 아닌 서양 연극을 접목한 창극을 극 중심으로 만들려 했던 과정에서 이런 평가를 받게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 교수는 “그동안 김연수 명창은 과소평가돼 왔다”며 “김 명창은 자신의 소리를 이론과 실천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려 노력했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동초는 자신의 이론으로 판소리를 재창조하고 이 결과가 5바탕 사설집과 음반으로 남아 있다”며 “사설집에 장단까지 표시해 자신의 소리를 확정적으로 기록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고 기술했다.

 

김연수 명창은 전남 고흥에서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29살에 유성준, 송만갑, 정정렬 등에게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웠다. 2~3년 만에 5바탕의 학습을 마쳤다. 그는 이전에 판소리의 기교를 익혔기 때문에 주로 사설과 장단을 베끼는 식으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국악단’, ‘김연수창극단’ 등의 판소리단체를 만들었고 조선성악연구회, 대한국악원. 국립창극단 등의 운영을 맡기도 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 5대 명창 가운데 한 사람인 유성준 명창에게 ‘적벽가’를 배우던 과정에서는 자신보다 한학에 깊지 못한 스승의 발음을 지적하면서 갈등을 빚었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최 교수는 김 명창의 임종을 기술하며 “판소리가 점점 위축되던 시대, 김 명창은 말년에 셋방에서 쓸쓸하게 죽었다”고 전했다. 임종 즈음 발표회를 앞둔 애제자 오정숙 명창이 찾아왔다 공연을 끝내고 초상을 치렀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저자는 동초의 1세대 제자인 김동준, 박봉선, 오정숙 명창과 2세대 계승자인 이일주, 조소녀, 성준숙 명창에 이어 이들의 제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동초제 판소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지난해 판소리학계의 중진 10명의 논문을 모아 펴낸 <김연수의 생애와 판소리> 의 대중판이다.

최 교수는 “연구 결과를 확산하기 위해 전문적인 용어를 바꾸고 복잡한 주석을 뒤로 돌려 대중용으로 만들었다”며 “김연수와 판소리, 창극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판소리가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명맥을 잇고 있지만 한때는 많은 사람이 일생을 바쳐도 좋을 만한 대상이었다”며 “이런 공감을 통해 오늘을 사는 이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다행이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전북작가회의 회장, 전북민예총 회장, 판소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남민시> 동인이다. 지난 1991년부터 판소리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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