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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대종경 목판화 작업 판화가 이철수 "경전은 훌륭한 인생 지침서…우리 삶에 의심들때 존재 일깨워"

▲ 충북 제천에서 만난 판화가 이철수씨. 80년대의 폭압적인 사회를 저항의 언어로 고발해 온 그가 요즘에는 원불교 개교 100년 기념사업으로 대종경 목판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안봉주 기자

전주에서 제천까지 3시간 가까운 동안 안개는 쉬이 걷히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는데도 길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거나 요동쳤다. 덕분에 길을 돌고 돌아 빠르게 갈 길을 주춤대며 돌아가야 했다. 판화가 이철수씨(61)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80년대의 폭압적인 사회를 저항의 언어로 고발해온 그는 90년대를 거치면서 자기 성찰의 사유하는 힘을 일상과 자연을 향한 깊은 통찰로 담아내는 우리 시대의 판화가로 우뚝 섰다. 그의 판화는 시대를 직시하면서도 맑은 글과 그림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깨어나게 했다. 그만큼 성찰의 시간은 그의 일상이 됐고, 사유는 깊었다.

 

3년 동안 바깥세상과 거의 결별하고 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불교 대종경(大宗經)을 목판화로 옮겨내는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불교 경전과 성서 등 종교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우리 시대에 필요로 하는 지혜를 판화에 담아온 그동안의 작업 연상에서 보면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경전의 모든 내용을 판화로 옮겨내는 과정은 그의 생애에 특별한 대장정이 아닐까 싶었다.

 

원불교 100년 사업으로 건네진 대종경 목판화 작업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했다. 경전을 읽고 또 읽는 동안 세상에 전할 이야기는 자꾸 늘어났다. 300개의 목판 밑그림이 그려졌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그 중 200개의 목판을 새기는 일이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주옥같은 가르침을 새기는 작업이다.

 

그의 경전 읽기는 대화의 과정이다. 덕분에 목판화의 작업 역시 경전의 글귀에 그림과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선문답 같은 이철수식 독특한 형식은 이 연작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한다.

 

경전에 대한 새삼스러운(?) 눈뜸에 그는 큰 인연의 기쁨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기쁨은 온전히 그의 목판화에 담겨 오는 가을이면 대중들을 만나게 된다. 대중들에게도 큰 행복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목판 새기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대화를 하면서도 목판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저기 쌓여있는 것이 대종경 작품인가요. 엄청나군요.

 

“200점정도 되는데 쌓아 놓으니 더 그렇게 보이는가 봐요. 완성된 것이 100여점 되는데, 다른 것들도 아주 손을 안댄 것은 아니어서 전체 작업 양으로 보면 70퍼센트 정도는 끝난 셈이에요.”

 

-대종경 자체가 워낙 방대한 분량이니 그렇겠습니다. 담긴 내용을 다 새기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이죠. 어차피 모든 것을 다 새길 수는 없으니까요. 내용을 읽으면서 메모를 했다가 그 중에 필요한 글을 다시 가리죠. 밑그림을 그린 것이 300여점 되는데 그 중 200점 정도를 새길 계획입니다.”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올해가 원불교 개교 100년이어서 기념사업으로 5년 전 쯤 제안을 받았어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인데, 그동안 경전을 열심히 읽는 일을 거듭하고 밑그림을 만들었어요. 올해 10월에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 마음이 바쁩니다. 애초에는 100점정도 예상했는데 그 정도로는 내용을 압축하기 힘들었어요. 아쉬움에 더하다 보니 300점이나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네요.”

 

-그만큼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다는 것이겠죠.

 

“처음 이 작업을 제안 받았을 때는 망설였어요. 60대를 앞두고 이 작업에 바치게 될 시간이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르는데 이 시기를 이 일하는 데만 써도 좋을지 고민이 되더군요. 중국 선승들의 선문집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종경을 두 번 정독 하면서 원불교 대종경과 다시 인연이 이어지게 된 것을 아주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만큼 좋은 경전이었죠.”

 

-다시 만났다고 하셨는데, 무슨 이야기인가요.

 

“20대에 원불교 경전을 읽은 적이 있어요. 아내가 원불교 신도였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때는 지금만큼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아주 새삼스럽게 참 좋은 경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 심부름을 마음을 다해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을 잡았을까요.

 

“기본적으로 쉬운데다 지극히 생활적인 내용이에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요즈음 시대를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 관해 의심을 갖기 십상이고, 잘 살고 있는지에 관해서 고민을 하게도 되죠. 그러면 뭔가 가르침을 찾아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어르신들이나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찾아가 들으려고도 하는데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내 이야기로 실감 있게 느껴지기는 어렵거든요. 들을 때는 솔깃해도 돌아서면 잊게 되거나 그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일은 더구나 어렵죠. 그래서 때로는 지혜로운 언어조차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 경전은 생생한 생활법문들로 가득차 있어서 시간적으로는 백년 혹은 수십 년 세월을 겹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법문으로 얼마든지 읽힐 수 있겠다는 것이죠.”

 

-허황하지 않은 지혜가 담겨 있다는 말씀이군요. 원래 선불교에 관심이 많으셨죠.

 

“그동안 그림을 통해 불교적인 지혜를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려고 애를 많이 써왔죠. 그런데 여기 정말 새로운 보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불교에 마음을 둔 분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이야기겠습니다.

 

“그동안 불교적 지혜를 빌려 쓸 때도 그랬고, 원불교 경전으로 작업 하면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특정한 종교를 선전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어요. 다만 어느 지혜든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면 다 가져다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죠. 혹시 종교에 관해서 불신을 갖고 있거나 특정 신앙을 가지고 있어 거부감을 갖게 되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는 꼭 해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온전히 이 작업에만 매달려 있으면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은가요.

 

“집에 앉아 있어도 저절로 다 알게 되는 것이 세상일인데요. 걱정 없어요.(웃음)”

 

-지난해에는 작업에만 전념하시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렇고.

 

“세상에 성을 낼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죠. 그런데 끝이 날 일이 아닌 것 같네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명에 관한 생각을 새삼스럽게 좀 더 되뇌거나 고민을 더 하거나 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존재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고요. 남은 과제가 많잖아요. 슬픔과 분노가 커질수록 세상을 바꿔내야 할 과제는 과제대로 차근차근 해결해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남은 생명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정직하게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경전 읽기가 그래서 더 특별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품마다 대종경에 담긴 글과 선생님의 해석이 붙여있군요.

 

“거의 그렇죠. 아주 예외적으로 덧붙일 말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제 나름의 해석이 놓여 있습니다.”

 

-경전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책읽기가 결국은 대화가 아닐까요. 경전 같은 책 읽기는 더 그렇죠. 단순한 정보를 전달 받는 차원이라면 경전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은 읽기일까요.

 

“경전 속의 이야기가 깨달음을 얻은 분의 이야기이거나 혹은 이야기가 있는 예화이거나 그것을 잘 읽어낸 독자는 그 말씀을 바깥 어느 지혜로운 분의 말씀으로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가장 훌륭한 경전 읽기가 되겠지요.”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역할을 기대하십니까.

 

“경전에 담긴 내용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대종사께서 내세운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같은 표어는 정말 놀라운 표현인데, 당시 파리 박람회나 도쿄박람회를 보면 산업사회가 보여줄 수 있었던 물질의 확장이나 확대가 굉장했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는 그런 환경을 공유할 수 있었겠지만 100년 지난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물질의 개벽만큼 실감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산업사회가 보여준 물질의 변화를 보고 ‘개벽’이라는 표현을 내놓을 만큼 그 변화를 아주 깊이 이해하거나 통찰한 점은 정말 놀라워요. ‘정신을 개벽하자’는 말씀은 물질의 급격한 변화, 상상할 수 없는 형태나 내용의 변화가 몰려오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 사회와 인류 전체의 화두로 삼아도 좋을만한 큰 화두예요.”

 

-그동안 불교 뿐 아니라 성서 작업도 많이 하셨죠.

 

“부분적으로 했었죠. 이 일이 끝나면 중국 선승의 선문집과 성서 연작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도 종교적 경계를 가리지 않고 작업 해오긴 했는데 이제는 그런 연작 작업을 통해서 그 안의 가르침이 어쩌면 같은 경지의 것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확인해보고 싶어요.”

 

-목판 작업을 옆에서 보니 노동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200점 연작을 하는 일이 힘들진 않습니까.

 

“이런 분량의 연작은 저도 처음이에요. 특히 이 작업처럼 글씨가 많으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그러나 다른 경우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작업이 많습니다. 기운을 소진하는 일이 예술인에게만 있는 일이겠습니까. 더러는 창작의 어려움을 말하지만 밥벌이로 하는 일도 힘이 드는 일이죠. 훨씬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요. 우리처럼 이미 허명도 조금은 생기고 이런 저런 기회가 생긴 사람들의 일은 보상을 충분히 받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판화 작업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품회화처럼 그저 한 두 사람 손으로 넘어가면 끝나는 방식 자체가 도대체 민주적이지도 않고 공공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시대적 상황도 그랬고 무한히 찍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가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조금 더 정교하게 가다듬는 수묵으로도 할 이야기는 대략 전해지는 것일 텐데 그것을 또 새겨서 찍는 번거로운 작업을 하게 되었죠. 지나고 보니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여러 사람의 손에 갈 수 있다는 공유의 가치에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새기는 작업을 하다보면 붓으로 그린 것과 목판으로 새겨서 찍는 것과는 또 좀 더 다른 결이 있습니다. 판각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 단순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전물 같은 매개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고 판화의 미학적인 요소가 있죠. 요즈음은 과거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던 기능을 출판이나 SNS 등 다양하고 기능적으로 변한 전달매체들이 대신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예술이라는 희미한 가치를 통해 판화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려고 하는 차원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작업은 그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인가요.

 

“책을 만들어 내거나 전시를 하는 것도 좀 더 많은 대중과 만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원본이 얼마나 감동 있고 설득력이 있나 하는 것, 혹은 얼마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가하는 과제일겁니다. 제가 해야 할 일도 그 일을 잘해내는 것일 텐데 감동도 아름다움도 공감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판화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헛발질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10년 넘게 해 오신 ‘나뭇잎 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정신을 깨우는 통로가 된다고들 합니다. 그런 글쓰기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요.

 

“여러 통로가 있겠지만 제가 즐기는 중국 선승들의 선문집류 읽기로부터 얻는 깨달음이 큽니다. 그 글은 대개 볼 것도 느낄 것도 가질 것도 많은 세상에서 최소한만을 가지고 겨우 배를 채우고 겨우 몸을 가리고 겨우 누울 다리를 만들어서 때로는 자기 먹을 것을 위해 밭을 일구는 최소한의 일을 하면서 삶을 온통 묵묵히 앉아 있는 일로 보내는 공부하는 사람들, 다른 곳에 한 눈 파는 일을 최소화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길어 올린 이야기거든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원불교 경전 뿐 아니라 모든 경전이 가진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경전은 아주 좋은 인생의 지침서 같아요. 존재에 관한 고민이 있거나 최소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이렇게 흘러가도 좋을까하는 의심이 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를 한번 돌아보게 하는 매개로서도 원불교 경전은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모든 경전이 다 그럴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경전들을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어요.”

 

마치 정갈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인터뷰는 특별했다. 어수선한 시절,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그의 표현처럼 ‘오리무중’이다. 게다가 삶이 고단해질수록 일상은 부유한다.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천착한 화가는 답을 얻었을까 궁금했다. “오래전 내놓은 작품 중 ‘개가 짖어도 법문이다’는 글귀가 있어요. 그 앞에 원래는 ‘마음을 열고 들으면’이 있었죠. 사는 것이 좀 힘들긴 하지만 마음을 열면 긍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을 열자고 애쓰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다 외면하고 있으니 삶이 고단할 수밖에 없지요.”

 

다시 정신을 깨우고 마음을 일으켜 세워줄 그의 목판화가 기다려진다. 예술의 기능이 유난히 새삼스럽다.

 

● 이철수 씨는 시대의 아픔 깎는 판화가…80년대 저항의 언어로 소통

판화가 이철수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려서부터 책읽고 글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지만 결국 화가를 택했다. 80년대, 시대는 엄혹했고 암울했다. 시대의 벽을 걷어내고 싶었다. 덕분에 이십대와 삼십대를 광장의 화가로 뜨겁게 살았다. 시위와 집회가 있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메시지 강한 그의 판화가 함께 있었다. 폭압적인 사회를 향한 저항과 분노의 언어는 거리로 나선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힘이 됐다.

 

빈민운동을 하던 허병섭 목사의 동월교회에서 아내 이여경씨를 만났다. 서로에게 참 좋은 반려자가 되었다. 20대부터 좋은 스승과 선배들과 교유했다. 그중에서도 70년대 후반에 만난 이현주 목사, 장일순 전우익 권정생 선생은 그의 삶과 예술을 변화시킨 인생의 스승들이다.

 

81년 첫 개인전을 비롯해 몇 차례의 개인전을 가지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판화가로 섰다. 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를 순회하며 전시를 했다. 동구권 공산주의가 몰락하던 즈음이었다. 전시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찰의 시간이 길어졌다. 1년 반 넘도록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림의 변화가 시작됐다.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화폭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림과 글이 잘 조화된 이철수식 판화가 대중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화두, 자연과 생명의 언어를 담은 그의 그림은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달래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거나 황폐해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새롭게 일깨웠다.

 

간결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의 그림과 선가의 언어 방식을 끌어들인 글쓰기는 깊은 울림으로 독자들을 열광시키고 끌어들였다. 광장의 걸개그림으로 생명을 얻었던 그의 그림은 ‘이철수식 판화’로 독창적인 경지를 구축했다. ‘낮은 목소리로 존재의 경이를 이야기하고 삶의 긍정을 말하는’ 그의 그림은 그만의 새로운 형식으로 ‘전통적 회화를 현대적 판화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80년대 후반 충북 제천으로 이사한 그는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살면서도 판화가로서 대중들과의 소통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주위의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는 그의 홈페이지에는 8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등록해 날마다 보내오는 그의 그림 엽서 ‘나뭇잎 편지’를 받아보는 즐거움을 나눈다.

 

디지털 문화를 멀리하면서도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해 기꺼이 인터넷 작업을 받아들인 그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저녁 그림을 그려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 10년 넘게 해오는 작업이다. 최근 3년 동안은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대종사의 언행록인 ‘대종경(大宗經)을 목판화로 새기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2011년 목판화 작업 30년을 맞아 펴낸 ‘나무에 새긴 마음’을 비롯, 판화산문집과 판화집, 엽서 산문집 등 20여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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