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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출신 남형두 연세대 교수〈표절론〉] 표절, 합리적 논의 틀 내놓아

정직·자유로운 글 쓰기 / 가이드라인·규범 제시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표절 문제는 단골 검증 항목이 됐다. 표절 시비가 일어났을 때 그 판정 기준은 무엇이며, 어디서 판정해야 할까. 최근 10여 년 사이에 수많은 표절 논란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것은 표절 시비가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자리에 오른 특정인을 겨냥한 게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낙마하면 문제가 된 표절 논란은 금세 잠잠해졌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만한 가이드라인이나 규범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숱한 논란 속에서도 문제 제기만 있고 해법은 없는 지루한 논쟁만 계속된 표절 문제의 악순환을 끝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표절에서 벗어나 정직하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가이드라인은 무엇일까? .

 

부안 출신의 남형두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이런 문제의식 속에 표절 문제에 관한 이성적이고도 합리적 논의의 틀을 제시한 최초의 본격 체계서를 냈다. ‘표절에서 자유로운 정직한 글쓰기’부제를 단 <표절론> 이다(현암사).

 

“그간 표절에 관한 학문적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표절 판정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적잖이 만들어졌고 대학마다 각종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사건을 해결하거나 정부나 대학 등 기관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나 판정 기준은 급조된 것이 많아서 왜 그와 같은 규정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논거가 부족하다.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저마다의 이론이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된 것은 그 때문이다.”

 

남 교수는 자기표절 논란을 그 대표적 예로 들었다. “자신이 이전에 쓴 논문의 일부를 새로운 논문에서 가져다 쓴 경우 표절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를 두고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어느 쪽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 일쑤다. 나아가 표절 의혹이 제기된 사람은 오히려 이와 같은 혼란을 틈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즉 표절에 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빠져나가려고 한다. 나아가 ‘재수 없어서 걸렸다’라거나 ‘알고 보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식으로, 정직하게 글을 쓰고 연구해온 대다수의 학자들을 매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표절자들이 숨을 곳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표절 연구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

 

저자는 표절금지윤리 또는 표절판정기준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는 표절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표절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도출하기 위한 논거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표절 대상이 되는 지식을 특정인이 전유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철학적·역사적으로 고찰한 뒤 현대적 관점에서 정보공유론이 표절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폈다. 2부에서는 간접인용(패러프레이징), 재인용, 출처표시의 단위, 부적절한 출처표시, 공저의 문제 등 현실에서 일어나는 표절의 구체적 쟁점을 찾아내 이론적으로 해법을 제시했다. 3부에서는 표절 판정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규정을 일종의 모델안으로 내놓았다.

 

책의 끝에는 ‘표절 백문(百問)’을 실었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표절에 관한 질문 백 가지를 뽑아 독자가 해답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학계의 공고한 침묵의 카르텔과 사회 일각의 여론재판식 문제 제기라는 양 극단의 경향은 표절을 논의하는 목적이자 근본인 ‘정직한 글쓰기를 통한 학문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논의의 장이 가장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저자가 6년 여의 연구 끝에 학계의 침묵의 카르텔로 존재해온 ‘판도라 상자’를 열며 이 책을 낸 동기다. 저작권법학을 개척한 한승헌 변호사, 최고의 법률문장가 박우동 전 대법관, 균형감을 강조한 박준서 전 대법관의 영향이 많았다고 저자는 책머리에서 밝혔다.

 

저작권법 전공의 저자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대학교 로스쿨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사법시험(제28회, 1986년) 합격 후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2005년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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