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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물·지형으로 읽는 전주

지역 정체성·역사 담은 책 잇단 출간

전주지역의 정체성과 지역사를 학습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전주문화원은 지역의 인물과 지형, 주요 화두를 모은 책을 잇따라 출간했다.

먼저 지역 인물연구서로 이희권 전북대 명예교수의 <조선의 자랑스런 전주 사람들> (신아출판사)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위인을 소개했다. 이 명예교수는 <완산지(完山誌)> 를 바탕으로 최양, 이경동, 유승조, 이계맹, 이주, 최명룡, 이기발, 홍남립, 이상진, 이기경의 삶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뒤 그들의 주요 업적과 사상을 기술했다. 더불어 그들과 관련된 도내 유물, 유적도 곁들였다.

▲ 이희권 교수

이 명예교수는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가 가능한·지역사회의 역사 문화적 전통을 탐구하고 규명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다”며 “전라인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서는 먼저 전라도가 유사 이래로 축척한 역사·문화·정치·사회·지리적 전통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서술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몽주의 조카였던 최양은 외삼촌이 살해되자 진안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절개를 지킨 인물로 기록됐다. 그는 이성계의 간청에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주 인근에 머물려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고려 말 토지제도 개혁과 노비 매매 금지를 주장했던 만큼 개혁적이었지만 한 왕조를 섬겼다.

 

벼슬을 떠난 뒤 전주의 추탄에서 낚시를 하며 여생을 보낸 이경동은 전주 출신으로 조선 시대 높은 관직에 올라 고장의 명예를 높인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혔다. 그는 좌승지, 황해도 관찰사, 예조 참판, 형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등을 지냈다. 시문과 경학에 뛰어났지만 부모를 여의고 관직에서 물러나 ‘완주에 사는 신선’이라고 불렸다.

 

전주의 유현(留賢)으로 당시 처사라 불렸던 최명룡은 유·불·선에 능통했지만 남긴 서적도 없이 은거한 선비로 아쉬움을 남겼다.

 

저자는 인물 소개와 함께 부록으로 전주 남고 산성의 유물과 유적, 전라감영의 조직구조와 관찰사 기능, 반역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정여립 모반 사건에 대한 관련 사료를 덧붙였다.

더불어 전주문화원이 그동안 전주 주변의 산에 얽힌 향토사를 발간하는 가운데 <건지산> , <황방산> , <완산> 에 이어 <승암산의 역사와 문화> 를 냈다. 이 책은 승암산의 지형적 특성과 풍수, 동고산성의 고고학적 상과를 돌아보고 승암산의 길을 따라 가다 만날 수 있는 주요 지물도 설명하고 있다.

 

승암산은 일찍부터 전주를 방어하는 산성으로 전주의 남동부를 둘러싸고 있다. 대동여지도, 전주부지도 등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관암고인돌과 성혈, 동고산성 기와 등은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특히 동고산성은 후백제시대 견훤이 기거했던 왕궁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동고산성을 두고 견훤의 옛 왕터라고 추청하는 기록은 조선시대 성황사를 옮기면서 남겨진 ‘전주성황사중창기’에 전해온다. 또한 1980년 ‘전주(全州)’라는 이름이 찍힌 연화문와당이 근처에서 발견돼 이를 뒷받침했다.

 

책은 승암산의 안내서로 천주교 순교자인 유항검 일가족의 묘를 비롯해 한벽루, 낙수동, 오목대, 전동성당 등의 해설도 볼 수 있다.

 

또한 주변 지명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문수골의 경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곳에 문수보살을 모시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도교와도 관련이 있어 무릉굴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무능마을이라는 명칭도 있다.

 

승암산은 유교, 불교뿐 아니라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조선 말기에는 천주교의 성지로 치명자산이라는 이름도 얻는다.

전주문화원은 연간 2차례 간행하는 <호남제일성> (통권 128호)도 함께 펴냈다. 기획 특집으로 나종우 전주문화원장이 ‘조선전기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전라도’를 주제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며 행정제도의 정비를 살폈다. 당시 고현내, 현재의 태인의 경우 관원 출신의 양반이 이주하고 이곳을 본관으로 한 퇴직 관리의 낙향 등으로 향촌사회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14세기 이후 양반들이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정치 권력도 이주민 출신의 양반에게 넘어가며, 군현의 통치에서도 향리가 아닌 유향소를 중심으로 한 지방관과의 연합이 세력을 키웠다는 것.

 

이충규 전주이씨 대동종악원 전북 덕진분회장은 ‘조경단 하마비 실체와 역사적 의미’에서 건지산 시조묘역의 제단과 비 건립 논의가 1765년 시작된 이후 고종 때에 이르러서야 설치됐다는 사연을 적었다. 시조가 선향의 터전을 닦았듯이 대한 제국을 시작하겠다는 고종의 의지를 담았다. 인조 반정 이후 경기전에 방치된 풍비를 건지산으로 옮겨 하마비로 새단장해 만든 과정을 상세히 적었다. 더불어 전라도 방언의 아름다움과 정신 문화에 대한 해석도 읽을거리다.

이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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