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권번 최후의 예인이자 춘향제의 전설로 평가받던 조갑녀 명인이 지난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23년 남원 권번의 악기 선생이었던 부친 조기환 씨의 다섯 딸 가운데 맏이로 태어난 조 명인은 조선후기 명무(名舞) 이장선 옹에게서 6살 때부터 춤을 배웠다.
그는 타고난 끼와 몸놀림으로 남원 일대에 ‘춤은 역시 조갑녀’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1931년 제1회 춘향제 때 9세의 예기(藝妓)로 광한루에서 펼친 승무 공연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
조 명인은 이후 10여년 간 춘향제에서 살풀이춤, 승무, 검무로 관객들을 매료시켰으나 1941년 결혼과 함께 춤판에서 자취를 감췄다. 30년 후인 1971년과 1976년 남원 국악계 인사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춘향제 무대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등 철저하게 춤의 본능을 숨기고 살았다. 그런 조 명인은 전통공연 기획자의 끈질긴 설득으로 2007년 10월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어머니의 춤’을 통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 명인은 제자인 딸들에게 “우리 춤은 무거워야 깊은 맛이 나고 가치가 있다. 그 무거움 속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으니 천하없이 좋은 가락도 무겁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춤은 곧 마음이다. 몸으로 배워 마음으로 춰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빈소는 건국대 장례식장 104호실에 마련됐다. 고인은 3일 오후 남원 국악의성지로 모셔진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