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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생태문화활력소 허철희 대표 "지역의 가치 지키는 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책무"

▲ 새만금과 핵폐기장 반대 운동의 고단한 싸움을 겪으면서 지역의 생태와 문화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부안생태문화활력소 허철희 대표. 부안의 역사와 문화사, 자연생태의 기록물이 가득한 사무실에서 허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걸어 나오고 있다. 안봉주 기자

오랜만에 봄볕이 좋았다. 그러나 전주에서 부안으로 가는 길은 예전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도로는 곡선을 없애고 직선으로 치닫는, 그것도 여기 저기 사방을 불쑥불쑥 자르면서 길을 터가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도로의 어디쯤에선가는 늘 ‘공사 중’이다. 돌아보면 몇 년 전만해도 부안의 모든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지막한 산과 해안선이 마주보며 이끌던 아름다운 길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부안생태문화활력소 허철희대표(64)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생태문화활력소는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옛 마포초등학교에 있다. 마을의 아이들이 하나둘 줄어들어 입학생이 없어지자 학교는 폐교됐다. 이 학교 건물을 사진가 허철희씨와 지역문화연구에 뜻을 같이 하는 후배들이 의기투합해 위탁받았다. 새만금과 핵폐기장 반대 운동의 고단한 싸움을 겪으면서 지역의 생태와 문화 환경을 지키는 일을 의식적 책무로 안게 된 활동가들의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건물 안은 온통 부안의 역사와 문화사, 자연생태의 기록물로 채워져 있다. 자료의 양도 그렇지만 내용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사진 자료는 거개가 허 대표의 수십 년 작업 결실이다.

 

“길은 잘 찾으셨습니까. 자칫하면 헷갈려서요. 좋은 경관 다 없애며 무슨 도로 공사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오랫동안 부안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찍은 자생식물 사진으로 꽉 채워진 벽 앞에 서서 그가 말했다. 툭툭 잘라져나가는 산허리, 사막으로 변하는 갯벌을 마주하면서 그는 더 조급해진다고 했다.

 

청소년기에 고향을 떠났던 그는 변산반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고향을 찾기 시작했다. 순전히 사업적으로 시작한 홍보사진 촬영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부안댐 건설로 갯벌을 잃은 주민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의식이 바뀌었다. 자성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철학은 단단해졌다. 30년 가깝게 부안을 기록해온 그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터뷰를 고사하는 그를 어렵게 만났다. ‘지역의 모든 것’이 그의 카메라와 함께 있었다. ‘부안’의 가치를 새롭게 만나게 된 시간,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됐다.

 

-부안에는 언제 내려오셨습니까.

 

“88년 변산반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 내려오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여기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어요. 새만금과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여기서 머물렀죠. 지금은 서울과 부안에서 절반씩 보냅니다.”

 

-하시는 일이 참 많더군요. 시민단체 활동으로도 그렇지만 인터넷 신문도 운영하시던데요.

 

“지금은 저 혼자 운영하는 1인 매체입니다. 2000년 6월에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개인 홈페이지로 운영하다가 지역의 이슈를 기사로 생산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했지요.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벌어졌던 시기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몇몇 필자들의 도움으로 부안의 역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는 수준입니다.”

 

-광고기획자에서 사진가로 길을 바꾸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충무로에서 광고기획 일로 잔뼈가 굵었어요. 사진도 사업상 필요해서 시작했죠. 관광홍보물 제작에 관여하다보니 사진도 그런 주제로 찍게 되었고요. 대한민국의 풍경과 자연유산을 많이 찍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던 시절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일에 회의가 생겼어요.”

 

-부안에 자주 내려오시는 시기였나요. 그때는 새만금이 시작되었을 때죠.

 

“그렇죠. 부안댐 건설로 갯벌을 뺏긴 어민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황폐해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거기에 새만금 사업까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다’ 싶더군요. 제 삶이 바뀌게 된 계기입니다. 그때부터 새만금 반대운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의 공동체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주민들이 새만금을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었죠. 그런데 주민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계기나 통로가 없었을 뿐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거든요. 98년 즈음부터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환경단체와 결합해 새만금 반대운동을 시작했어요. 덕분에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죠.”

 

-공부라면…….

 

“(웃음) 사진으로도 그렇고 지역도 그렇고 제가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저는 겉만 보았던 겁니다. 문득 내 자신의 철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가 찍는 사진의 관련 분야를 공부를 해보니 관점도 달라지고 의식이 변해 새로운 가치를 만날 수 있었어요.”

 

-되돌아보면 새만금 반대운동의 많은 부분이 문화적 활동과 연계되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새만금 반대운동은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문화적인 논리로 대응하면 훨씬 설득력을 갖게 되니까요. 갯벌의 가치를 분석해 널리 알리는 일도 그 중의 하나였는데, 당시만 해도 갯벌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아서 성과는 높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갯벌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되었지만 이미 상당부분이 사막으로 변했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새만금도 그렇지만 핵폐기장 반대 때는 지역사회의 갈등과 상처가 아주 깊었죠.

 

“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깊었죠. 되돌아보면 엄청난 시련이었어요. 부안 사람들에게는 온전히 치유되기 어려운 트라우마죠.”

 

-현장을 지키며 사진으로 기록해놓으셨으니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르는 부안의 생생한 사회사가 생생하게 남아 있겠습니다.

 

“자료는 거의 다 있죠. 제 할일이 그것이었으니까요. 특히 새만금에 관한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력한 덕분에 그 과정과 흔적 대부분이 현장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 요청도 많이 받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습니까.

 

“새만금 방조제가 2006년 4월 21일에 막혔잖아요. 그 이튿날부터 3일 동안 패닉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몸을 추스려 나가봐야겠더라고요. 현장에 가보니 그렇게 건강했던 갯벌이 어느새 하얀 소금 꽃이 핀 사막이 되어 있는겁니다. 고작 3일 지났는데. 충격이었습니다. 3일 전과 3일 후의 갯벌 풍경을 담게 되었는데 극과 극의 현상이 놀랍습니다.”

 

-지금 완공된 새만금을 보면 어떻습니까.

 

“국토이용 차원에서 본다면 이제 제대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러나 지금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잘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 않거든요. 저는 부안 시내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산길로 갑니다. 바닷길이 막히고 갯벌이 사막화 된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 그 길로는 못가겠더라고요.”

 

-이제는 새롭게 생겨나는 땅을 희망적으로 활용하는 길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데요.

 

“그렇겠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돌아보면 더 안타깝기 만한데 지금도 갯벌을 잃은 어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눈물 나와요. 갯벌을 잃고 실어증에 걸린 분들도 있어요. 왜 안 그렇겠어요. 70대 할머니들도 갯벌에 나가서 일을 하면 하루 몇 만원씩 벌었는데 지금은 몇 천원이 없어 시내를 못나온다고 합니다.”

 

-일상이 파괴된 상황이 안타깝군요.

 

“새만금과 관련해 아마 군산부터 부안까지 2만세대가 보상을 받았을 겁니다. 근데 그 보상이라는 것이 형편없었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하루에 10만원도 넘게 벌었는데 갯벌이 없어지니 인력시장에 나갑니다. 고창 정읍까지 가서 하루 농사일을 하고나면 몇 만원 받는다는데 그 일거리 마저도 부족해 아는 후배는 택배 일로 생활을 꾸려갑니다.”

 

-화제를 좀 바꾸어보죠. 갯벌에 대한 추억이 많으시죠.

 

“그럼요. 어려서는 갯벌이 놀이터였어요. 마을에서 조금만 나가면 갯벌이었으니까요. 그때 몸으로 체험하면서 얻은 지식을 지금 작업에 잘 써먹고 있지요. 처음에 갯벌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보니 지도가 그려지더군요. 물때가 언제인지, 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태계를 알고 있으니 시행착도 없고 어려움도 겪지 않았죠.”

 

-자료가 엄청날 것 같습니다. 분야도 그렇지만 양도 방대하겠죠.

 

“부안에 관한 것은 자연 생태부터 문화적 역사적 공간과 유산, 사회사를 망라해 기록했고, 역사적 사료도 복사해 후에라도 지역연구에 활용될 수 있도록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양이 많죠.”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역의 현재를 기록함으로써 역사적 사료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한 개인의 작업이니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지역을 기록하는 이런 작업들이 있어야 지역사가 바로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좀 거창하지만 지역의 가치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싶어요. 역사 문화 민속, 지역적 특성을 온전히 보여주는 자생식물과 갯벌, 그리고 옛 문헌까지를 포함해 제가 작화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료로 남아 있는 것까지도 모두 모아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자료는 어디에 보관해놓으셨나요. 예전에는 필름 사진이어서 그 분량이 꽤 많을 것 같은데요.

 

“(웃음) 그것이 문제예요. 디지털 사진 이전에는 필름을 활용했잖아요. 그때 찍은 필름이 정리되지 못한 채로 있거든요. 보관할 당시에라도 메모를 잘했어야 하는데 기억할 수 있겠지 싶어 그냥 쌓아둔 양이 너무 많아요. 작년에 아카이브 구축을 하기 위해 정리 작업을 시작했는데 기본적인 정리 작업만 꼬박 1년이 걸렸죠. 서울 올라가면 그 일만 하다 내려왔다니까요.”

 

-개인적으로 담아내기에는 버겁겠습니다. 경비도 그렇고. 혹시 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에서 지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기관이나 자치단체의 지원은 한계가 있어요. 제가 해온 일들이 대개 관과는 대척점에 있는 일들이었으니까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럼에도 이런 자료들이 지역과 관련 분야에 꼭 필요한 자료들이니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아직 적극적인 통로를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자료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자치단체나 관련기관에서 가져야 마땅한 일이죠. 어느 지역도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기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부안은 행복한 곳입니다.

 

“그런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죠. 모든 역사는 기록이 말해줍니다. 지역은 더 그렇죠. 가장 지역적인 것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데, 우리는 늘 다른 것만을 바라보며 따라하려 하거든요. 우리 것을 잘 갖고 있어야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고향을 떠났던 젊은 세대들도 돌아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잘 지키는 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여러 분야 중에서도 가장 힘들인 작업이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새만금 갯벌 생태와 어민들의 삶을 주목했었어요. 새만금 일대의 생태지도를 그려놓고 싶었죠. 그래서 막히기 전에는 거기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학자들조차도 갯벌에 관심을 가진 분이 적었어요. 그러니 대중들이야 갯벌의 가치를 알고 있을 리 없죠. 갯벌은 간척해서 땅으로 만들어 활용해야 더 가치가 있다고 본겁니다.”

 

-지금은 부안의 자생식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몇 년째 헤매고 있는 작업이죠. 변산의 자생식물은 끝이 없는 일 같아요. 제가 주위에 ‘나 발목 잡혔다’ 말할 정도죠. 이제 됐다 싶어 그만할까하다가도 뭔가 더 좀 조사해야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늘 준비를 하고 있죠. 언제라도 계곡을 뒤질 태세가 되어 있는 겁니다.(웃음)”

 

-그렇게 많습니까.

 

“이쪽이 해안을 끼고 있는데다 남방계 식물의 북방한계선, 북방계 식물의 남방한계선이 겹쳐지는 지점이 많거든요. 또 해안가 식물은 또 그들대로 따로 있기 때문에 엄청 많아요.”

 

-학계에 보고된 것 이외에도 많이 나옵니까.

 

“국립공원에서 필요한 영역을 조사하는데 대략 800여종이 보고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영역을 넘어 위도와 왕등도까지 포함해 조사해보니 900종은 훨씬 넘고 1천종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서 찍은 것을 도감과 비교해 구분하고 수정하면서 정리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그렇습니다. 다시 분류를 정확하게 하면 구체적인 종수가 나오겠지요.”

 

-부안은 아름답고 역사도 깊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런 요소가 부안의 가장 큰 힘이겠지요. 그래서 오늘을 기록하는 일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안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천혜의 보고인 갯벌도 그 아름답던 해안선도 사라졌습니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 되었죠. 둑을 트지 않으면 답이 없으니까요. 우리 지역에서는 이제 섬진강 하나 남았습니다. 보로 막혀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합니다. 강화도가 건강한 것은 그곳 하구가 막히지 않아서예요. 금강 영산강 낙동강 다 막혔잖아요. 자원의 가치로도 그렇지만 생태적으로도 죄짓는 일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허 대표의 작업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의 자연이, 역사와 문화가, 사회사의 기록이 진행되고 축적되는 과정은 의미 있는 일이다. 부안은 다른 지역보다도 이런 작업이 활발하다. 건강한 의식을 공유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지역을 보듬어 안고 가꾸어나가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 시대에 맞는 지역문화의 건강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허 대표와의 인터뷰가 그 답을 준다. 부안의 미래가 기대된다.

 

● 허철희 대표는 새만금·핵폐기장 반대 운동…인터넷 신문 창간하기도

허철희 대표는 부안 변산면 마포리가 고향이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 놀이터는 조금만 나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이었다. 자연스럽게 갯벌의 생태를 그때 체험으로 알게 됐다.

 

중학교를 마치고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갔다. 청소년기를 보내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충무로에서 광고기획 일을 배웠다. 수습을 거쳐 정식으로 일하는 동안 그는 광고기획의 전반적인 업무를 실전으로 익혔다.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과 편집까지의 전반적인 업무가 그의 몫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그를 역량 있는 광고기획자로 성장시켰다.

 

카피라이터부터 아트디렉터 과정을 밟아 광고기획자로서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광고기획을 하다 보니 외주로 나가게 되는 사진작업의 분량이 너무 많았다. 사업성 면에서 보면 큰 손실이었다. 어차피 관심 있었던 분야이기도 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웠다.

 

80년대 중반 즈음 독립해 작은 광고기획사를 내고 전국을 대상으로 관광홍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88년 변산반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자 고향의 풍광을 제대로 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정도 작업하면 사계절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는 것도 지식도 없이 의욕만 갖고 덤벼들었던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지역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부안의 자연과 역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사진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88년부터 부안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 그의 작업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유다. 덕분에 부안의 생태와 자연 경관은 물론, 문화사와 지역사회사까지의 모든 시간이 그의 사진에 담겼다.

 

1998년 서울에서 운영했던 광고기획사의 문을 닫고 프리랜서가 됐다.

 

부안댐 건설로 어민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현장을 마주하며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깨닫게 된 즈음이었다. 더 이상 그는 고향을 떠난 출향민이 아니었다.

 

새만금과 핵폐기장 반대 운동의 중심에 서면서 부안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더 단단해졌다. 2000년에 인터넷 신문 ‘부안21’을 만들었고, 2006년에는 뜻이 맞는 후배들과 ‘부안생태문화활력소’를 열었다.

 

지역사에 대한 열정은 더 깊어져 2009년 지역 인사들과 ‘부안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지역 답사를 이끌고 있다.

 

새만금과 관련된 각종 기획전과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되어 전시했다. 2000년 1월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던 새만금 매향제를 기획한 이후부터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모아낸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을 펴냈으며 〈허철희 사진집〉과 〈변산반도자생식물〉을 냈다. 지금은 오랫동안 이어온 부안의 자생식물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일상이 이 작업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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