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권부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의 권력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의해 합리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초법적으로 행사된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권부라고 하면 청와대의 대통령 권력을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권력행사를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 군사독재정권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군부야말로 권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군부를 권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 군부가 권부에서 물러난 대신 전혀 새로운 집단들이 새로운 권부로 등장하고 있지 않나 국민들은 염려하고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거대 언론과 검찰과 거대 재벌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지난날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도 하고 국민에게 사과도 했지만 반성도 사과도 않는 집단이 있다. 언론과 검찰이다.
새로운 권부로 지목되는 언론, 검찰, 재벌중에서 언론환경의 개선, 언론의 권부화문제가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언론과 정권과의 관계에 대하여 몇가지 생각하고자 한다.
나는 이승만 정권 말기에 언론계에 들어가 근 17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그 이후는 정치인으로, 합쳐 55년간이나 언론과의 밀접한 접촉속에서 지내왔다.
우리나라가 권위주의와 군사독재정권을 극복하고 이만한 민주화를 이룩한 데는 일부 언론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
그러나 근래의 언론상황은 국민들에게 공정하고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양대에 걸쳐 나는 정권과 주요언론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여러사람이 나서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환경이 개혁되지 않고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된 정치를 할수없다는 단호한 의지로 맞서 싸웠다.
노무현 대통령 말기 언론과의 관계가 최악일 때에 ‘언론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는 마십시오.’라고 말한 나의 충고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언론과의 싸움이 당장의 성과도 없고 나에게 상처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언론행태가 개혁되지 않고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된 정치가 불가능합니다. 나에게 상처가 될지라도 국민속에 문제를 제기하고 떠나겠습니다.’
국제적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의 작년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도평가는 민주정권시절 20위였던데 비해 68위로 추락했다.
정치도 언론도 국민도 우리 언론환경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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