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7월 16∼18일) 비교적 큰 행사를 치렀다. 3일간 전북지역 고교생 1만 명가량이 한 곳에 모이는 진로·진학 안내 프로그램이었다. 규모가 제법 큰 건물에 100개 가까운 학과부스를 설치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공에 대한 소개와 체험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입시상담도 곁들였다.
이러한 행사는 아직 전공에 대해 심지가 굳게 박히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의 학과를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정보에 목말라 있는 우리 지역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해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예정된 사업비 지원이 늦어졌다. 여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불안이 채 가시지 않아 준비가 수월치 않았다. 장맛비가 쏟아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3년째 행사를 치르며 이번에 공익(公益)을 위한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정당한 공익적 분노가 제도 개선과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1층과 2층으로 구분된 행사장은 7월 중순의 무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층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으나 2층은 그게 아니었다. 건물 에어컨을 최대한 가동하고, 이동식 에어컨 5대를 동원했으나 하루 3000명이 넘는 열기를 이기지 못했다. 더구나 2층 로비 구석에는 인문계 학생들이 많이 찾는 학과가 포진해 있어 학생들로 넘쳐났다.
아니다 다를까 A학과 관계자가 운영본부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다. “1층과 2층 온도가 너무 차이가 난다. 이것은 형평에 어긋난 것이다. 똑 같은 조건으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든 해결해 줘라”는 요지였다.
어린 친구가 항의하는 모양새가 비위에 거슬렸지만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밀리는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업체 직원을 부르고 이동식 에어컨을 더 설치했다.
그러자 과부하가 걸렸는지 전원이 나가 버렸다. 라인 전체에 전깃불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오후 내내 반복했다. 어쩔 수 없이 A학과가 속한 단과대 부스 전체를 새벽에 1층으로 옮겨야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불똥이 또 다른 곳에서 튀었다. 2층 A학과 옆에 있던 다른 단과대학 B학과장이 보자고 해서 가봤더니 길길이 날뛰는 게 아닌가. 불같이 화가 난 이 여성 학과장은 속사포로 쏘아댔다. “왜 우리 학과를 푸대접하느냐? 우습게 보이느냐? 우리 학과가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느냐? 다른 학과는 이름만 들어도 학생들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부스를 옮기려면 우리까지 같이 옮겨줘야지 이게 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학과장은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같은 학과 관계자를 혼내기 시작했다. “너도 잘못이야. 이런 상황이면 우리도 옮겨 달라고 해야지 바보(?)같이 가만있어. 당장 부스를 철수해! 내년부터는 참가하지 말고.”
실컷 소리 지른 뒤 화가 조금 풀리자 B학과장은 겸연쩍은 듯 했다. “이 행사 책임자가 누구냐”며 항의해야겠다고 내려갔다. 사실 B학과장은 초면이긴 하나, 전혀 인연이 없지 않았다. 지난 해 내가 맡았던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행사에 만족해서인지 관계자를 통해 병에 담긴 커피액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 기억이 나자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자신의 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불쾌했지만 무관심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들의 항의 때문만은 아니나, 다음 행사는 형태를 달리하기로 했다.
공익을 위한 분노(항의)는 개혁의 시발점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정의로운 참여의 다른 이름이라고나 할까. 정당한 분노,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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