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음악가 배출 기반 역할 / 우리 민요 내재된 화성은 보편성
몇 해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작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동명의 아일랜드 민요인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를 원제로 한다. 이 노래는 400여년간 행해진 영국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영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의 시신을 침대에 둔 채 조문객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육성으로 불려졌다. 순간이지만 이 영화의 배경을 모두 설명하는 노래였다.
영화 ‘취화선’에는 이춘희 명창의 ‘이별가’가 나온다. 임권택 감독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춘희 명창의 노래를 듣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임 감독은 노래의 배경이 된 사계절을 타임랩스로 담아내며 한편의 아름다운 뮤직비디오와 같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민요는 서민의 문화적 감성을 담은 ‘노동’과 ‘놀이’, ‘의례’와 더불어 ‘시대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아일랜드의 민요는 18세기 하프 연주자였던 오캐롤란(O’Carolan)에 의해 정리돼 오늘날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아일랜드 전역을 걸어서 여행하며 각지에 있는 민요를 악보로 남겼다. 이 자산은 오늘날 월드뮤직밴드인 치프턴스(Chieftains)를 비롯, 수많은 아일랜드 음악가를 배출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먼저 세종대왕이 박연을 통해 음악을 정리하게 하면서 민요 수집도 진행했다. 팔도의 현에서 민요를 채집해 매년 보고토록 한 것이다. 세종과 세조는 민요 부르는 사람을 궁으로 불러 공연하게 했다는 내용이 실록을 통해 전해지기도 한다.
당시 수집됐던 민요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고정옥 민요 연구가의 기술에 따르면 민요는 많은 경우 ‘도가(徒歌)-악기 연주 없이 노래만 부르는 것’의 형태로 추정된다. 그 특성상 무리지어 함께 부르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래다. 또 듣는 사람이 없어도 길을 가며 혼자 부르는 노래다.
월드뮤직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포크 리바이벌’은 영미권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산업화와 정의롭지 못한 정치에 대한 반항을 다뤘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민족 정체성의 자각을 위해 시작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창배, 정득만 명인이 운영했던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중심으로 경서도민요가 정리되고 전수됐다. 최상일 프로듀서와 그의 방송 팀이 20여년에 걸쳐 한국토속민요의 발굴과 채집을 통해 이룬 성과는 민요 연구에 큰 이정표를 세웠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멜로디, 반주가 없거나 복잡하지 않은 악기로 연주되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이 연행됐던 민요는 음악과 공연산업의 발전에 따라 음반으로, 공연으로 새로운 옷을 입었다.
서양음악의 수용에 따라 일제시대에는 선양합주로, 해방 이후에는 한양합주로 서양악기와 전통악기가 민요를 연주했으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기도 했다. 고(故) 백대웅 작곡가는 민요에는 ‘내재된 화성’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민요가 ‘세계 음악의 보편성을 담고 있음’을 기술한 바 있다. 전통음악의 현대화에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될 민요의 가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에 곡을 붙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한때 애국가의 곡조로 불렸고 세계인의 노래가 됐듯이 ‘아리랑’을 비롯한 많은 민요를 더 가까이 하고 삶의 주변에서 풍성하게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음반프로듀서 김선국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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