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아이는 희망의 근육을 길렀고 나는 묵은 상처를 씻어냈다
“영화 어떻게 봐야 해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나는 영화치료 선구자인 ‘비르기트 볼츠’박사의 말을 전해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의식적 자각 하에 보세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변형되고 변화됩니다. 우리의 주의는 지각할 때마다 바뀌고, 이는 우리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대개는 부정확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요.’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마음의 반영이다.’
캐나다의 유명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데이비드 길모어’의 영화 보기는 좋은 본보기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제시’와 계속해서 영화 140편을 봤다. 이유는 이혼 후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 아들이 술, 코카인, 누드잡지 등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급기야 제시는 학교를 자퇴한다. 길모어는 궁여지책으로 한 가지 제안한다. “마약은 안 돼. 오늘부터 나랑 일주일에 세 편씩 영화를 보는 거야.”
193㎝ 거구 아들이 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앉는다. 길모어가 영화를 선택한 기준은 세 가지다. ‘좋은 영화, 고전영화, 매력적인 영화.’ 첫 번째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누벨바그의 주역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다. 이 영화는 처음 상영작이자 제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다. 제목의 뜻은 ‘400번의 매질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라는 프랑스 격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문제아였던 트뤼포 감독은 이 말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말 파리다. 에펠탑을 롱 테이크로 비추던 카메라가 당도한 곳은 한 중학교 교실이다. 영화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틈에서 누드화가 돌아다니는 장면을 비춘다. 주인공 ‘앙투안 드와넬’(장 피에르 레오 분)이 사진을 받고 막 무엇인가 쓰려는 사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벽을 보고 돌아서서 벌쓰는 앙투안, 벌은 쉬는 시간에도 계속된다. “휴식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상이야.”선생님의 말이 천둥처럼 귓전을 때린다. 보상받지 못하는 그의 삶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앙투안을 임신한 상태에서 재가했다. 지금껏 바람을 피운다. 의붓아버지는 자동차경주에만 몰두할 뿐 집안에는 관심조차 없다.
앙투안은 절망의 나락에서 헤맨다. 거짓말 조퇴, 무단결석, 좀도둑질…. 궁지에 몰린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가출을 단행한다. 허름한 인쇄소 창고에서 자고 일어난 배고픈 새벽, 우유를 훔쳐 먹는 그의 앞길이 안개 자욱한 저 도시보다 더 뿌옇다. 아버지 사무실의 타자기를 도둑질하다가 들켜 소년원에 들어간다. 검은 배경, 검은 죄수복, 검은 아이. 영화는 암울함의 끝이 어디냐고 묻는다. 앙투안은 축구시합 중 탈옥하여 하염없이 내달린다. 영화는 아무 표정 없이 달리는 아이를 대사도 없이 4분이 넘도록 비춰준다. 바다에 다다른다. 평소에 동경했던 반가운 곳이지만, 지금은 길을 가로막는 야속한 곳이다. 돌아서는 아이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한다. ‘이 아이 어떻게 해요?’
앙투안은 학교에서 딱 한 번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평소 발자크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그다. 기말 작문시험에서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발자크의 소설 《절대의 추구》를 읽으면서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명한 말 ‘유레카’(알았어, 바로 이거야!’라는 뜻)를 보고 자신감을 갖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시험을 0점 처리한다. “너는 뻔뻔스럽게 표절을 했어.” 아이는 울면서 가슴을 쥐어뜯는다.
제시는 앙투안이 찾은 ‘유레카’를 보고 마음을 돌린 것일까? 그는 스스로 학교에 복학 한다. 길모어는 제시와 함께 한 상황을《기적의 필름클럽》이란 책에 일기처럼 적고 있다. 책이,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오버랩 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주옥같은 영화가 내 지난날을 반추하였기에 한동안 그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활기차게 걷고 있는 저 젊은 애. 내면의 방이 정말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돌볼 수 없는 내가….’ 길모어의 독백이 계속된다. ‘우린 둘 다, 두려운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우리 둘 사이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을 알게 한 아버지 길모어는 끝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희망의 근육을 길렀고, 나는 묵은 상처를 씻어냈다.’
〈Singing In The Rain.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다가 주제곡에 맞춰 텝 댄스를 췄을 부자의 정겨운 모습이 어른거려 눈물을 찔끔거리고 말았다. 소매를 당기는 듯한 영화의 유혹, 공명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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