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기억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고 죽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 형체가 사라지면, 결국 기록 속에만 존재한다. 학자들이 역사를 완벽히 복원할 기회도, 후대의 사람들이 조상의 생활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
그만큼 문화재의 형체는 가치가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듯이, 인간은 글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들이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폼페이는 좋은 선례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최적의 유적이다. 2000년 전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화산재가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줘 어느 고대도시보다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허술한 관리로 건물의 붕괴가 잇따랐다. 지난 2011년에는 긴급 보호대책이 필요한 ‘위기유산’으로 지정될 우려도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유럽연합(EU)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찾았던 폼페이는 곳곳에서 보수·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복원 전문가 알베르토(43)와 코린나(37)로부터 유적지 복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복원에 대한 생각과 자세, 과정 등을 말했다. 위기에 처한 폼페이 유적지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문화재의 관리부실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사례는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반면교사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참고할 만하다.
△폼페이 유적의 발굴과 위기= 나폴리에서 27km 떨어진 폼페이 고고지구는 기원후 79년 8월24일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에 묻혀 사라진 도시가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를 완벽하게 뒤덮은 4~6m 두께의 화산재 때문에 2000년 전에 사라졌던 도시가 고도(古都)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폼페이 고고지구는 18세기 나폴리 왕실의 후원에 의해 발굴이 본격화됐다. 250년 이상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옛 시가의 약 5분의 4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
이 도시에서는 신전, 대저택, 수도교, 유곽, 프레스코화 등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미술, 건축술과 성 의식 등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이 발견됐다.
포장된 도로와 호화로운 대저택, 빵집, 세탁소, 음식점을 포함한 수백 개의 상점들, 그리고 공중목욕탕을 갖춘 문명화된 고대도시였다. 이와 함께 30여개 이상의 유곽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간이음식점에는 음식조리대와 업장, 업장 장식을 위한 벽화, 그리고 곡식을 갈던 맷돌과 오븐까지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화산폭발 당시 죽음에 직면한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도 ‘석고’의 형태로 발굴됐다. 뱃속에 있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임산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개 등 다양하다.
그러나 문화재 강국이라 불리던 이탈리아도 처음부터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복원을 해내진 못했다. 폼페이 고고지구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검투사의 집’, ‘도덕주의자의 집’ 등이 붕괴됐다. 지난 2014년에는 폭우 때문에 비너스 신전을 받치고 있는 석조구조물 일부와 포르타 노체라 공동묘지에 있는 한 무덤의 돌벽 3.5m 구간이 무너졌다. 붕괴이유는 2차 대전 당시 손상된 폼페이 건축물을 1940년대에 졸속으로 복구해서다.
결국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감시단에 의해 ‘위기유산’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했다. 위기유산으로 지정되면 세계유산 등재가 말소될 수도 있다. 유적에 대한 부실 관리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던 이탈리아 정부는 2013년부터 ‘그랜드 폼페이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인 대대적인 폼페이 보수 작업에 착수했다.
△문화재 복원 이어 관광마케팅도 한몫= 폼페이 고고지구는 지난 2년 동안 복원에 대대적으로 힘쓴 결과, 거의 완벽한 상태로 고대도시를 재현해냈다. 수천 년 수백 년 된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복원돼 고대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복원현장에서 만난 알베르토 씨는 “지난 2013년부터 회반죽 벽화로 유명한 ‘신비의 저택’을 비롯해 16개 유적 보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중 3개의 프로젝트가 완료돼서 정부가 발표했고, 현재 발표되지 않은 일부도 거의 완료된 상태다. 현재 우리가 보수하는 유적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유적지는 올해 12월까지 작업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의 실책도 반면교사 삼아 유적지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실제 ‘비극시인의 집’과 선술집 등 여러 건물들 중 훼손우려가 있는 곳은 유리판을 세워 관람객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화재 복원에 이어 관광마케팅에도 발군이다. 유적이 위치한 곳곳의 기둥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설치돼 있어 각 유적의 성격과 역사적 유례를 들을 수 있다. 매표소 근처에 위치한 비너스 사원의 벽면에는 복원한 벽면과 옛 벽면을 색깔로 구분해 놓아 관광객들에게 유적지의 현 상태를 알려준다.
이외에 고고지구 인근의 베수비우스 화산, 나폴리에 있는 세계유산과 연결된 교통편이 있어 관광객들이 역사를 다채롭게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연간 관광객은 300만명 정도다.
△ 메디컬센터 운영 등 관광객 배려= 폼페이 고고지구 내 공회당 인근에는 응급의료센터가 있다.
의료센터에 따르면 무더운 여름에 유적지를 관광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환자가 종종 발생해 세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응급환자만 치료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관광하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운영시간 내에는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
내부에는 각종 의료도구, 환자용 침대, 이동식 들것 등 다양한 의료도구들이 구비돼 있다.
운영비는 이탈리아 내무부에서 100% 지원한다. 크리스마스와 명절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운영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다. 치료비는 무료다.
의료센터 관계자는 “폼페이 고고지구 전체를 관할한다”면서도 “여태까지 환자들을 100% 구조해 치료했다”고 말했다.
● 폼페이 유적 어떻게 복원하나…전문가에게 듣다 "후세 사람들 잘 알아볼 수 있게 원형 그대로 되살려야"
폼페이 고고지구 유적복원 현장은 안전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관광객의 접근을 통제했다. 보수를 하는 유적은 비계 등 작업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었다. 햇살이 작렬하는 현장에서 복원전문가들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복원 토대가 기록된 기초조사자료를 보며,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복원이 완료된 뒤 드러난, 일부 유적에서는 장인의 정성이 돋보였다.
현장에 있던 복원전문가 알베르토씨와 코린나씨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폼페이 고고지구의 복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줬다. 알베르토씨는 피렌체 복원전문학교를, 코린나씨는 베니스 복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5년 동안 전문과정을 이수한 뒤, 지난 2000년부터 현장에 뛰어들었다.
-복원을 할 때 문화재의 원형을 고려한 정비방법을 철저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옳은 말이다. 근거자료가 없는 문화재 복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복원전문가가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복원을 왜 하는 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 복원에 대한 깊은 고민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고대의 유적지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원된 유적지를 후대의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관광객들이 복원해놓은 신전, 상점, 대저택, 목욕탕 등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관광객들은 해당공간을 보고 고대 로마인들이 생활했던 모습을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복원을 관광객들을 끌기 위한 상업적 목적만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드러내야 관광객들이 흥미를 갖고 유적지에 몰려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현재 복원하는 유적을 위한 재정지원 규모는.
“유럽연합에서 투자형식으로 지난 2013년부터 100% 지원하고 있다. 투자금은 총 1억 500만 유로다. 단 무상지원은 아니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입장료 11유로 중 1~2유로씩을 유럽연합에서 가져간다.”
-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는가.
“건축, 벽화, 벽, 그림 전문가 등 각 부문 유적 전문가와 역사학자, 정부와 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함께 논의를 한다. 공동작업 형식이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한국에 조언할 말이 있다면.
“우리는 복원한다기 보단 주로 보수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훼손된 부분만 전략적으로 고치기 때문이다. 나머지 부분은 복원에 필요한 기술이 완벽하게 개발될 때까지 기다린다. 문화재의 복원과 보수는 속도전이 아니다. 상당히 섬세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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